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비스바덴에서.....밤거리를 걷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16. 3. 3. 20:51



2주에 가까운 여행의 마지막 밤을보낸 비스바덴이다. 온천의 도시 비스바덴에서 스파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대신 근사한 오페라 공연 하나를 챙겼으니 되었다. 비스바덴도 소비도시라, 극장과 카지노가 한 풍경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카지노 가는 길엔 각종 패션 브랜드 샵들이 가득하다. 봄맞이 신상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늦은 밤, 디스플레이 유리 안에서 외롭게 서 있는 마네킨을 보고 있자니, 항상 애잔한 마음부터 든다. 마네킨을 볼 때마다 우리가 흔히 언캐니(Uncanny)라고 부르는 세계를 만난다. 섬찟함과 익숙함이라는 이질적인 두 개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마네킹은 그런 점에서 여행객의 내면을 닮았다. 



작은 호수에 비친 야경이 좋다



카지노다.....이번 여행은 학생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어서 더 좋았기도 했다. 서로의 비전을 찾고 뜻을 되묻는 계기를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카지노의 파사드 앞에서도 포즈를 취하며 사진찍기 놀이에 빠졌는가 하면, 129미터의 유럽 최대의 열주 회랑인 쿠어하우스 회랑을 거닐고, 며칠 전 보았던 헤센 국립극장이 있는 테아터 콜로나데 사이를 마치 도시의 나무 숲을 해치듯 걸어다녔다. 



이번 여행은 우선 뜻깊다. 꽤 오랜만의 외유인 셈이고, 아이와 아내를 두고 떠난 여행이라, 가족 생각에 훌쩍거리기도 했다. 나도 아빠가 되었나 싶었다. 수많은 쇼핑센터와 아케이드, 백화점, 아울렛, 빈티지 샵을 다녔던 내가 매장에서 아기 옷만 찾고 있다는 것도 놀라왔고, 그런 시간이 행복했다. 나도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놓여있나보다. 밤의 적요한 시간을 관통하는 사람들의 늦은 발자욱 속에는 도시의 낮, 햇살이 아로새긴 사람들의 한숨이 녹아있다. 이제 곧 도시는 더욱 고요해질 것이고 다시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여행을 하며, 책을 읽고, 스마트폰과 멀어지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꽤 많은 거리를 걷기도 하며, 달라진 식단 앞에서 호기심과 식성을 부리는 건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은, 바로 지금의 나를 '거리를 두고' 독해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책이나 여행이나, 결국 장소란 일종의 인간의 무늬를 읽는 자리다. 장소를 달리하며 지금의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그런 점에서 여행은 새로운 안경을 맞추는 일이다. 



니나 쾨니히란 아동용품점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우리 서아와 함께 여행을 하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최소 9살은 되어야 걷기 일정들을 따라온다는데 말이다. 세상엔 함께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이제는 그 곳을 함께 갈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서 행복하다. 비스바덴을 비롯해서 다음에 찾아올 때는 여러날을 묵을 기대를 하고 와야 하는 곳들이 늘었다. 내년에도 디자인 여행을 하려고 한다. 이탈리아나 북유럽을 생각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박물관에서 패션 관련 소품들과 품목들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 잊어버릴까 두려워 복기하는 정신은 마음의 단열재가 된지 오래다. 이런 노력들이 결국은 나를 만들어왔기에. 이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