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클럽 옥타곤에서-클라라 주미강의 바이올린을 듣다

패션 큐레이터 2015. 12. 17. 23:46



오늘 뉴힐탑호텔의 클럽 옥타곤에 갔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주자 클라라 주미강과 피아니스트 김정원님의 연주회가 열렸다. 디제이의 현란한 사운드 작업에 이어 클래식 선율이 귓가에 울린다. 아니 가슴을 울렸다고 해야겠지. 오늘 열린 행사는 옐로우 라운지란 신개념의 클래식 음악파티다. 옐로우 라운지는 1898년 설립된 독일의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과 유니버설 클래식이 함께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2004년 12월 베를린에서 시작되었다. 그 목적은 간단하다. 콘서트홀이란 기존의 향유공간을 넘어, 대중을 선도하고 흥분시킬 수 있는 클래식을 선보이자는 것이었다. 



연주가 발생하는 장소에 대해 꽤나 보수적인 입장들을 견지하고 있는 한국에서, 적어도 이런 스타일의 공연은 클래식과 거리가 먼 젊은층들을 유입하기엔 좋은 포맷이란 생각이 든다. 닫힌 음악에서 열린 음악으로의 변화랄까. 클래식은 항상 대중 저변화를 외치면서도, 항상 시연공간을 콘서트홀에 스스로 묶어둔 면이 있다. 



예전 가죽바지에 깔끔하게 흰 셔츠를 입고 손열음과 함께 연주하던 그녀를 본 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연주는 항상 팝과 클래식, 두 경계선을 굳이 허물거나 넘나들 필요가 없이 음악이란 언어로 갖은 표정을 발화한다.



드라마 작가였던 엄마와 피아노를 선택한 아들, 만 다섯살에 피아노에 입문 15살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빈 국립음대 최연소 수석 합격자가 되었다. 김정원은 국내에서 참 귀한 쇼팽 연주자 중의 한 명이다. 사실 내겐 영화 속 마지막 씬을 훔친 남자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인인 영화 프로듀서가 만든 <호로비츠를 위하여>란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연주석에 앉아있던 그 남자가 바로 김정원 교수다. 오늘 그는 쇼팽의 녹턴을 무대에서 그렸다. 한 편의 그림을 그리듯. 선율을 따라 그를 담으려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 자체가 오브제가 된 느낌이다. 



클럽에서 만난 김정원씨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고 선하다. 그의 연주회를 꽤 자주 갔던 나로서는, 클럽에서 만나는 이미지는 생경하기 보다 더욱 가깝게, 연주자의 면모와 표정, 제스처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연주회 동안 잠깐씩 연주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던 건, 그저 기록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들이 몰입하고 있는 순간의 진실을 그나마 담아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나온 클라라 주미 강,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연주회는 항상 기다려지곤 했다. 클래식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의 연주에는 그저 대중과 친밀하기 위해 파격적인 의상을 하거나 혹은 연극적인 퍼포먼스에 기대는 그런 것과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연말이어서 그랬는지 오늘따라 그녀의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연주는, 선율이 빚어내는 정령들이 기포처럼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보칼리제, 말이 없는 노래라는 뜻이 이곡은, 귀에 익숙한 선율이지만 익숙하다는 것이 곧 친밀함의 기준이 되진 않는 것일 거다. 아련한 침묵과 대비되는 화려한 조명의 공간은 유독 이 곡의 내면을 증폭시킨다. 결국 침묵이라는 것도 발화되는 공간이 필요한 주권적 행위가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연주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작은 공명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