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시몬느 0914-달빛 아래를 걷는 자들의 기쁨

패션 큐레이터 2015. 10. 20. 11:15



시몬느 0914 오프닝에 다녀와서


"세계적인 핸드백은 모두 이 회사의 것이다"라고 천명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마이클 코어즈에서 셀린, 지방시, 버버리까지, 솔직히 ODM을 한국업체가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랬다. 바로 시몬느란 회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비오는 날, 폭우를 뚫고 만났던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님은 나와는 미술품 컬렉터라는 공통점과 함께 가죽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분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만 했다.



2500억을 들여서 해외 브랜드를 사오면 되지만, 그것보다 정말 우리만의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던 그 한 마디에, 사실 나처럼 기업가를 깐깐하게 평가해온 컨설턴트의 마음이 녹았다. 그때부터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의 홍보대사처럼 활동하고 다녔다. 사람들에게 박물관의 다양한 핸드백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너무 좋았고. 내겐 복식사를 연결해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이번에도 근사한 갤러리 공간이 내부에 생겼다. 앞으로 가방을 포함한 다양한 패션과 미술 전시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이 되면 좋겠다.



드디어 0914 자체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생겼다. 그것도 에르메스 바로 옆에. 이 정도면 한 판 하자는 의지일터. 에르메스 못지않은 자체의 내적 역량과 장인의식의 결집을 보여줄 공방이 인상적이었다. 회장님께도 공방이 너무 멋지다고 한 마디할 수 밖에. 워낙 이직율이 낮기에, 시몬느 내에는 장인기술을 가진 분들의 이력을 모두 합하면 1천년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핸드백 제작과정도 배우고 싶은데 짬이 나질 않아 아쉽다. 



에르메스 공방처럼, 제작과정이 투명하게 반영되는 공간처럼 구성한 것이 매력이다. 



손의 힘을 믿는 기업이 되어주시길 소망한다. 



가방 하나로 긴 호흡의 승부를 걸어왔던 기업답게 앞으로도 한 길을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을 내어 들렀던 매장, VIP룸도 멋지게 구성되어 있어서 한 컷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제품기획과 마케팅도 더욱 뚜렸해질것이고 한국 고유의 핸드백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날로 깊게 하는 브랜드가 되길 바람한다. 이것은 사실 나와 같은 시몬느 외부사람에게조차도 작은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우리 것을 개발하고 세상에 알리지 못한 탓에, 남의 것, 이미 선취된 것을, 시간차를 두고 한국에 수입해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사업의  문법은 이제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몬느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상품기획과 디자인이 좀 더 치밀하고, 템포에 맞추어 하나 하나 마치 옷을 벗기듯, 그 정체성이 선연하게 '일신 우일신'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일 뿐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더욱 선별과 집중의 논리가 필요할 것이다. 잘 해내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구색갖추기 식이 아닌, 정말 한국적 전통과 현대의 만남, 장인의식과 현대미술의 오랜 컬렉팅 이력이 보여주는 감각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을 '보여'주었다는 것. 이 정도로도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토종 브랜드를 만드는 일 보다, 외국수입을 선호해왔던 우리기업문화에도 작은 균열과 창의적 변화를 불어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달빛 아래를 걷는 심정일 것이다. 이제 문은 열렸고, 결과를 봐야 한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의 길을 걸을 것이다. 달빛에 의거해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가장 먼저 새벽을 보는 특권을 누린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로 마무리 해야 하지 싶다. 시몬느가 최고의 브랜드가 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