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 박사과정을 맡으면서, 김영사와 계약한 패션철학 원고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패션이란 왠지 이질적일 것 같은 세상을 만나게 하는 일은 고단합니다. 국내 학자의 문헌은 없고, 의상학 관련 교수들이 써놓은 패션과 철학을 화두로 한 논문은 인용할 내용이 일절 없는데다, 그나마 스벤든이 쓴 <패션철학>의 재인용 정도 밖에는 없더군요. 외국의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먼저 치고 나가서 할 엄두를 못내고, 말끝마다 레퍼런스 타령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고문서를 뒤지거나, 라틴어를 익혀 원본에 접근할 생각은 하지 않는 자들. 누군가 틀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논리와 언어게임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 이들.
이런 자들이 대학에서 교수를 하며 자신들이 가르치는 세상의 얼개를, 함부로 풀어해쳐 제대로 해명도 하지 못한 채 아카데미의 두껍 안에서 살아갑니다. 개중에는 그래도 전혀 자신의 업적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학생들과 대중을 위해 번역작업에 착수하고, 글을 쓰고 매일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학자들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페이스북으로도 그런 분들만 만나고 있지요. 얄팍한 학계에서 자기네들이 써놓은 논문으로 무슨 카드 돌려막기 하듯 상호인용하며 원래 원문의 의미를 헤치고 원전의 출처를 감추는 교수들도 봤습니다. 유독 패션쪽 교수들이 이게 심하더군요. 그저 제자들이 그나마 연구해서 조금 괜찮은 논문을 쓴다 싶으면 공저로 하자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뻔뻔함이 어찌 그리 하늘을 찌르는지.
경영학을 깊게 오랜동안 공부하며 실무에서 살아온 제게는, 사실 인문학 공부는 항상 새롭고 버겁기도 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통계수치나 그래프를 읽는 것이 더 익숙하고, 수치로 사건을 추정하는 일이 익숙했던 제게, 인문학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은 흥미롭고, 또한 저 스스로의 무지에서 탈피하게 위해 무거운 책들과 싸움을 벌어야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원리에서 출발하여 합리적 추론을 이끌어내는 정신의 기하학과 감수성을 잊지 않는 사물에 대한 관념은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다시 한번 배워낸 것들이기도 합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가며,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갱신하는 자아를 가진 자에게는 어제는 항상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어야 하며 때로는 부끄러운 소치의 하루여야 합니다. 루소의 말처럼 과거를 공부하는 것은 '우아하게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위에서 나를 자유케 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패션의 역사도 철학과 인문학의 렌즈로 읽게 되면, 다시 한번 접근하거나 추출해야 할 지혜들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3년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시작한 패션철학 스터디가 이제 조금씩 실타래를 풀어가네요. 힘을 내서 걸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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