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남산 산책길.......순간을 만끽한다는 것은

패션 큐레이터 2015. 7. 21. 23:52



오늘은 대학교에 갔습니다.졸업증명서를 떼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다 할 수 있지만 을지로에 기업강의 나간 김에, 산책도 할겸 갔습니다. 최근 단국대학교 패션산업디자인과 대학원 과정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의 한 과목을 맡게 되었습니다. 생각지 않게 수락하게 되었는데요. 기업강의만 하다가 학생들을 만나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이걸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출판사도 정해놨고, 에디터도 오케이 사인을 했지요. 



제가 다니던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조밀하게 구성된 즐거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학교 구성도 예뻐진 것 같아요. 



크리스천이었지만, 저는 불교강론과 문화사 수업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경전이란 것이, 왜 불후의 의미를 지니는지, 세대를 관통해 항상 사람들의 정신을 되짚게 해주는 기능을 하는지, 사실 이런 생각들은 제가 기독교과 불교를 비교하면서 예전 비교종교학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정각원은 참 변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물론 학부때 이곳 뒤편에는 항상 서늘해서 벽에 몸을 기댄 채 책도 참 많이 읽었더랬지요. 



학교에서 서류를 떼어 팩스로 보낸 후, 남산 산책길에 접어들었죠. 비온 후라 그런지, 그렁그렁한 하늘의 빗망울이 포도 위에 여전히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신록의 계절을 더욱 진하게 우려내는 듯한 날씨.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정말 산보네요. 보폭을 꽃을 뿌리듯 걷는 이 걸음이 좋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산책광입니다. 걸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이때 생각도 정리되고, 속보와 완보를 반복해가며 몸의 지친 부분들을 마치 패치워크로 바느질하듯, 산책이란 바느질을 제 건강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제 모교에 대해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이 학교를 다녔기에 영상과 연극을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즘이야 연극영화과가 정말 각 학교마다 다 있다시피 하지만 제가 다니던 90년도에는 동국대, 단국대, 중앙대, 서울예대 정도가 전부였어요. 게다가 서울 안에 있었죠. 그러니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익히자는 마음으로 참 부전공인 연극연화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영상과 기호학, 필름 제작, 촬영, 시나리오 작법, 영화사와 영화 비평 수업등 사실 이때 배운 것들이 세월이 흘러가며 조금씩 마음 속에서 걸러지고, 보강되면서 여전히 공연을 평론하고 영화를 읽는 일, 영상 이미지를 인문학적으로 평가하는 일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한예종이 생기면서 도서관에서 다양한 영화 원서들을 빌려다 제본해서 읽고는 했죠. 요즘은 이렇게 하면 불법이지만, 그때만 해도 워낙 영화 관련 원서들이 비싸서 그랬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때 국립극장도 참 자주 드나들었지요. 연극작품 보며, 자료실도 참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걸음 걸음 마다 보이는 촉촉하게 젖은 꽃잎들이 고와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어요.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의 철학>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왜 걸으면서 행복할까요? 그것은 자연을 측량하며, 내 안의 영혼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다는 작은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느림과 속도는 생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그 리듬은 오로지 발과 지면이 닿는 그 순간의 촉감의 누적을 통해 만들어지죠. 땅 앞에서 숭고함을 느끼고 겸허해지는 것. 걷기는 그저 단순하게 거리이동을 위해 우리의 몸을 쓰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남산 산책로를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분들이 부러운 오늘이었어요. 요즘 육아 때문에 아이와 항상 붙어있어야 해서, 몸의 움직임이 적어졌어요. 그래도 이렇게 작은 호흡하나 정리할 수 있으니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