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제국의 위안부-나도 당신에게 사과하기 싫다

패션 큐레이터 2014. 6. 20. 20:11

 

 

나도 네게 사과하기 싫다


인터넷을 보니 한 권의 책과 그 내용을 둘러싼 논쟁으로 뜨겁습니다. 세종대 일어일문과 교수인 박유하란 사람이 쓴 <제국의 위안부>란 책입니다. 출판사가 뿌리와 이파리군요. 제게 익숙한 출판사입니다. 꽤 좋은 책들을 많이 내는 곳이었는데. 


박유하 교수의 의견은 지금껏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일본에 의한 타율적 근대화론을 넘어, 조선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관리매춘'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일단 그녀의 주장이 흥미로왔습니다.  성폭력/행을 둘러싼 개인의 기억은 '조작'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기억하고 들어온 위안부 이야기가 반쪽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면을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기억의 자리'를 찾고 싶다고. 그런데 이 말도 제가 보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그 기억의 자리란 '정확한 사실관계의 좌표'가 아닌, 각자가 재구성하는 기억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하에서 이뤄졌다고 스스로 기억을 재구성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니나 다를까 고노담화의 재검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고노담화란 1993년 8월 4일 미야자와 개조 내각의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1년 8개월 동안 조사에 걸쳐 발표한 위안부 관련 담화를 말합니다. 이 담화의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로 징집되었고 여기에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내용을 인정하고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자체 검증하고 내용을 발표한 것이죠. 발표당시 일본 내 극우들이 반대했고, 이번 발표안에는 그 반대이론의 면면이 담기겠지요. 문구를 조정하자는 식의 말이나 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친일을 미화하는 총리 지명자의 발언이 연일 매스컴을 탔습니다. 국민의 64퍼센트가 대통령의 총리지명을 철회하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명자는 버티며 자신을 옹호하기 바빴지요. 


이런 와중에서 박유하씨의 <제국의 위안부>는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저자는 우리가 기억하고 들어왔던 위안부 이야기가 반쪽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면을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기억의 자리'를 찾고 싶다고. 그런데 이 말도 제가 보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그 기억의 자리란 '정확한 사실관계의 좌표'가 아닌, 각자가 재구성하는 기억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하에서 이뤄졌다고 스스로 기억을 재구성할 때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녀는 다양한 사료를 들어 반박합니다. 당시 위안부의 정서는 일본 창기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는 주장까지 하죠. 일면 동의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안의 광폭에 가까운 민족주의가 무조건 옳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한일 양국관계의 모순과 문제점이 우리의 그릇된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읽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지요. 


국가의 범죄에 대해서 결국은 시스템이 모든 것을 했다고 말할 때, 그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있었던 이들의 범죄는 어느 누구의 죄가 아닌 어떤 것이 되어버리는 걸 봤습니다. 여기에 위안부 동원령에 자발적인 한국인의 공조관계가 있으니 모든 걸 일본의 범죄로 치부하기 어렵다하는 건, 전범의 거대한 시스템의 요소를 하나씩 떼어놓고 쪼개어봄으로써, 범죄의 연쇄사슬에 자발적이건/비자발적이건 동참하고 죄를 저지른 이들의 내용을 경감시키려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자 본인은 누구보다 일본의 범죄상에 분개하지만 합리적인 한일관계의 모색을 위해 이면을 파헤쳤다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요 우리의 그릇된(?-당신의 주장대로) 민족주의가 왜 나왔을까요? 전후 일본은 여전히 자신의 범죄에 대해 국제사회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 사과와 조문들, 담화발표가 있으면 끝인가요? 인류의 삶을 놓고 벌인 그들의 죄를 한번도 통렬히 일본 국민 전체가 사과하고 그 마음을 담아 생을 살아냈던가요? 독일과는 판연히 다르죠. 

국제사회는 여전히 그런 일본의 이중성과 은폐적 속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고요. 화해를 말하고 용서를 말하는 것 좋죠. 용서를 구하려면 가해자는 피해자 앞에서 진정 용서를 구하기 위한 내적/외적 사죄부터 있어야죠. 제대로 없었잖아요. 그래놓고 모든 원인을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를 들먹인다손, 당신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페미니즘 이론이 전쟁이란 상처와 실제 경험에 노출된 채 살아야 했던 이들을 구제하고 있습니까?

이 책은 자세히 읽다보면 유태인을 향한 조직적 범죄에 가담했던 전범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책임을 지울 때는 '죄의 덩어리' 전체를 봐야 합니다. 하나하나 쪼개어보니 결국 '누구의 죄도 아니더라' 라는 말은 범죄사실에 대한 물타기일 뿐이지요. 더욱 열이 받는 건 이 사안이 논쟁거리가 되고 난 후, 당신이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저는 여기서 사실 당신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 겁니다. 


가라타니 고진을 인터뷰했고, 진보 교육감을 뽑았다고, 당신 책의 서평을 경향신문이 써줬다고, 당신의 발언이 진보적 내면을 가진 자의 말이라고 해도 여기에 비판할 수 있는 것이죠. 당신이 글로 써서 발표함으로써, 학문적 논의일 뿐이라고 핑계대고 싶겠지만 시장에서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책으로 출간된 이상, 비판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원색적인 비난도 듣게 되는 거죠. 학자적 관점이란 이유로 고립주의를 택하는 것도 옳지 않죠. 차라리 당신을 향해 토악질을 하고 욕하는 이들을 향해 끝까지 최적의 해법을 찾고 논리로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었어야죠. 


하지만 당신의 반응은 하나같이 '제 책을 읽어보셨나요'로 일관했습니다 이 말에는 '내가 사료들을 분석하고 읽어낸 방식으로 당신은 읽지 않았군요'라는 말을 전제하는 것 같아서 불쾌합니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사안에서 툭하면 '몰이해'란 단어만으로 변증을 하는 학자가 어디 있나요? 페이스북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는 이들에게만 응답하는 태도부터 고치세요.


당신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사과할 수 없다, 잘못한게 없고 사과하게 되면 나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정합니다. 당신의 그 해명은 죽어라고 국민을 향해 사과하기 보다 '유감표명'이나 찍찍 거리는 정치가 집단을 연상시켰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당신이 사과를 하면 본인을 부정하게 된다는 말처럼, 당신이 부정한 저들, 바로 여지껏 살아서 싸우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뭔가요? 당신이야말로 그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까? 정대협에 대한 당신의 웅크린속마음에 대해 저는 관심없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그 위안부 할머니들 중 일부는 권력화가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당신같은 학자들의 언어는 무조건 가치중립적인가요? 말같잖은 소리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