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5.18을 위해 읽어야 할 것들

패션 큐레이터 2013. 5. 19. 00:58

 

 

 


봄비 오는 날, 극장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른 하늘이, 불투명 구름으로 가득 덮혔다. 5.18일 행사가 반쪽행사가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도 모르게 아쉬운 마음 가득할 뿐. 제대로 분노하지 못했다. 토월극장에서 본 연극 <부활>. 톨스토이의 고전을 오랜만에 정극을 봤다. 톨스토이의 고전을 읽었던 것이 언제인지. 연극을 보고 나서 책상 한 켠에 그의 책을 올려두었다. 예전 그어놓았던 한줄 한줄의 명문들을 다시 읽어보기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사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연극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예전 러시아를 한달 반 동안 있었지만, 극장의 스케줄을 봐도 고전극은 보기가 쉽지 않았다. 부활은 1899년 당대 러시아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부정한 삶의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작품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적용되는 측면이 있다. 5.18을 맞아 정말 제대로 읽어야 할 한 권의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가지고 배운자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심도깊은 질문을 던진다. 



연극무대는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다. 무대를 장악하고, 연결하는 이음새 하나하나가 치밀하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느라 장치들을 현대적으로 조화시킨 점도 좋다. 무대디자인은 삼단으로 분리되고, 회전하고 빠지고 솟아오르며, 극중 인물들을 맥락 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킨다. 그러나 메시지는 하나다. 마지막 장면, 십자가를 들고 가는 남자를 향해, 사람들은 외친다. 십자가가 멋져......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십자가는 우리 시대에 유효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자기 앞의 인간을 보지 않고 또 인간에 대한 자기의 의무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직무와 그 직무가 요구하는 것만 보고, 그 직무를 인간관계가 요구하는 것보다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부활> 중


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퍼져 있는 미신 중 하나가, 인간 개개인은 저마다 일정한 자기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한 사람, 약한 사람, 영리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게으른 사람 등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이렇게 분류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한 인간에 대해 그 사람이 악할 때 보다는 선할 때가 더 많고 어리석을 때 보다는 영리할 때가 더 많고, 게으른 때보다는 근면한 때가 더 많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선한 사람이라거나 아니면 영리한 사람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약한 사람이라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을 이렇게 나누고 있다. <부활> 중



직무중심적 삶을 살다보니, 십자가가 요구하는 삶을 망각한 크리스천들에게, 연극은 강력한 메시지로 우리를 숙연케한다. 종교를 떠나, 부활은 우리의 삶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생의 기적이다. 부활은 라틴어로 Anastasia다. 다시 일어섬이다. 일어서기 위해선 중력의 힘을 넘어야 한다. 중력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관성과 습관, 누군가를 분류하고 따시키고, 짓밟고, 인간이 인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이 더러운 시대에, 웅크리고 덮개를 유폐시킨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발기하는 것이다. 


5.18을 둘러싸고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무리들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극의 마지막 대사를 적어 본다 "봄은 온다. 인간이 비옥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온갖 애를 써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그러진 상태를 유지해왔다. 역사적 진실을 가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저열한 세력들 때문이리라. 그러나 역사는 부활하고  평화의 힘도 부활한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는 것은, 잦아있는 우리 내 인생의 열정을 준엄하게 되돌아보고 복원시키는 작업이다. 라틴어로 열정(Enthusiasm)은 그리스 신화 속 내면의 신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언론을 무화시키고, 일베를 동원하고, 역사교육에 대한 책임을 개판으로 만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가 아무리 이 역사의 비옥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한다해도, '우리들의 열정'이 있는 한 우리의 내면은 너희의 의지대로 물들지 않음을. 난 그것이 부활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늦게 온다해도 봄은 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가 찾아야 할 봄은 멀리 있지만, 그 봄은 이미 우리 안에서 조금씩 들어차고 있음을. 5.18을 늦게 보내며 작은 연극 단상을 바치는 것으로, 상처의 무늬를 기우며 산 이들에게 헌화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