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 리뷰-너희가 에로영화를 아느냐

패션 큐레이터 2013. 8. 27. 12:34

 


에로에 의한, 그러나 애로를 위한


어제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생각지 않은 수확을 거둔 기분이다. 연출과 연기를 맡은 에로영화 감독 봉만대를 다시 보았고, 에로 무비 장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섹시코미디 장르를 표방한 듯 홍보를 하고 있던데, 이건 아니다. 이 영화는 섹시코미디가 아니다.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빼어난 수작이자. 이 영화는 우리에게 엉뚱한 수작을 건다. 에로영화만 전문으로 찍는 봉만대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남극일기>같은 주류영화를 만들던 임필성 감독의 차기작에 연출로 투입된다. 이유는 단 하나, 영화 속 찐한 에로씬을 뽑아내는 게 마뜩치 않았던 제작자의 극성 때문. 이 영화는 제작 현장에서의 애로사항들을 유쾌한 반전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성은, 곽현화, 이파니, 여기에 에로대역배우까지, 영화는 분명 에로틱 영화의 코드를 삽입하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들을 깔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연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실제로 느낌 아니까......란 유행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실생활에서 누적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니 연기라고 말해주기 어렵다는 점일거다. 하긴 이런 이유로 에로영화의 형식을 빌어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바나나 빨아먹는 사진이나 올리며 언론 플레이를 해온 곽현화의 경우, 촬영장에서의 쌍욕하는 장면은 딱 그냥 그녀다. 어떤 체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성형으로 만들어진 충만한 가슴을 가진 배우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에로 영화 촬영을 위한 스펙일 뿐. 이런 모습이 영화 제작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해준 이는 감독역을 맡은 봉만대와 제작자 역할을 맡은 배우다. 그들을 보는 순간, 예전 영화사에서 일하던 기억이 떠올라 불편하고, 그래서 더 눈물 났는지도 모르겠다. 


에로영화의 한국적 계보학을 쓰다


이 영화의 미덕은 오히려 에로영화라는 비주류 영화, 그러나 가장 많은 이들의 욕망을 채우는 한 장르에서 오랜동안 길을 걸어온 감독의 철학을 엿볼 수 있음에 있다. 에로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항상 '더' 보여줄 것을 요구하면서도, 그 행위자체를 지우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영화 속 봉만대 감독은 남성적 관점에 길들여진 에로영화에 젖어있다. 아티스트 봉만대란 영화가 나름의 위상을 갖게 되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현장을 통제하고, 벗기 두려워하는 배우를 설득하고, 추스리며 영화를 만든다.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의 에로영화 감독이 있다. 틴토 브라스라고. <올 레이디 두잇>에서 그는 여인들의 엉덩이를 지속적으로 클로즈업하며, 사물에만 빛깔이 있는게 아니라, 여자의 엉덩이에도 빛깔이 그런 다양한 빛깔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관음증'의 본질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에로란 남자가 소비하는 여자의 몸에 초점이 맞춰있기 일쑤다. 그래서 여자들이 이 장르를 싫어한다. 여자가 에로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내숭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여자의 몸이 소비되는 방식이 싫어서다. 봉만대 감독은 바로 이 부분에서 여자들을 배려하는 에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늘어놓는다. 아주 찰지다. 



영화 속 배우 성은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에로배우 출신에서 배우로 가수로 아무리 역할을 바꾸어 보아도 한번 낙인찍힌 몸에 대한 관객의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독백들, 다큐적인 방식으로 채록한 화면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영화는 꽤나 유쾌하게 진행된다.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영화제작현장을 경험해봤거나, 혹은 그 세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놔본 이들에겐, 이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오마주 필름처럼 다가온다. 


영화란 화려한 세계, 꿈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의외로 버겁다. 배우도, 제작자도, 감독도 마찬가지다. 배우는 이전의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보려고, 어떻게서든 떠볼려고 고생하고, 제작자는 비용 아끼고, 관객몰이를 위한 말초적인 화면도 만들어보려고 감독을 상대로 삿대질도 해야하고, 감독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일들과 싸운다. 어디 이뿐인가? 촬영이 끝나면 개봉에 맞춰 배급사의 입맛에 따라 가위질도 해야한다. 주류감독이라고 B급 영화 감독이라고 다를 건 없다. 에로영화 감독이 좀 더 서러운 것일뿐. 이 영화는 10년에 걸쳐 에로영화감독으로서 현장에서 당할 대로 당한 감독의 서러움을 잘 표현했다. 그래서 정말 눈물이 난다. 에로감독이 아니라 진짜 아티스트라고 보여지기에. 



아티스트 봉만대는 영화제작의 현실과 뼈아픈 비급 감독의 삶에 바치는 오마주 필름이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성찰하는 자기반영성(Self-Reflexive)영화를 매우 유쾌하게 뽑았다. 그래봐야 역시 씁쓸한건, 돈 있는 제작자의 뜻대로 세상이 다 돌아간다는 엄연한 현실이겠지만. 참 예술하기 힘들다. 어찌되었든 올 9월, 잘잘한 입소문으로, 한국영화의 색다른 엉덩이의 빛깔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흥해라! 아티스트 봉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