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변호인> 미국시장에서도 통할까

패션 큐레이터 2014. 1. 7. 14:12

 

 


영화<변호인>, 미국에서 흥행할까


영화 <변호인>의 미국 LA 상영이 보류되었다는 소식이 온라인에 들려왔습니다. 미국배급을 책임진 NEW 에서 갑작스레 보류결정을 한다는 미주 중앙일보의 기사 때문이었죠. 다행히 배급사 NEW 의 트위터에 2월 7일 상영확정 공지가 났습니다. 정치적 노선이나 혹은 영화 속 주인공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식의 견해를 넘어, 저는 한편의 영화가 가진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왔습니다. 800만 돌파를 넘어, 보편과 상식, 정의란 매우 헐리우드적 사유와도 맞물린터라, 소비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상영을 누구보다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변호인>의 특징이 가족관람이 많다는 점일텐데요. 그만큼 잠재수요를 일깨우는 작품이라서, 기대가 더 컸습니다.


영화란 상품은 시장개발의 문법이 정해져있는 상품입니다. 헐리우드에서 장르 영화가 나온 것은, 특정한 이야기 구조를 지속적으로 소비해줄 소비자 행동에 근거해 만든 룰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변호인>은 단순히 교포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소비해온 행동과 정신의 차원 바로 '공화적 가치'를 건들어주는 영화였지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오히려 캐캐묵었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보편적 상식 차원의 메세지니까요. 



영화 <변호인>의 이야기구조는 그리 새로운게 아닙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미스터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류의 영화적 변주입니다.  이건 헐리우드가, 공화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알리면서 오랜동안 울궈먹었던 소재입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이런 공화적 가치를 소개할 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시장성도 더 컸습니다. 영화적 신선도를 만들기 위해, 동일한 장르지만 타국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외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의 경제적 가치를 아는 것은, 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창조경제의 한 핵심입니다. 영화컨텐츠가 강력한 것은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채널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그것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란 '실체'가 가진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이야기란 가치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새롭게 옷을 입고 이전의 기억을 포맷합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지요. 요즘 마케터들에게는 상식이 된 스토리텔링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문화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어놓을 때, 전 지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이야기로 삼되, 로컬의 상황과 맥락, 미학을 섞어서 상품화하는 논리는 상식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첨병인 미국이 지금껏 패권을 쥐고 있는 건 내부의 자기고발능력도 한몫 합니다. 영화는 사회의 한 단면을 거리감을 두고 보게 하는데, 이런 자기 고발류 영화들은 자칭 '가위질'을 해대는 위원들의 생각과 달리, 보는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자정노력'을 하려고 하는 과정 그 자체, 혹은 그런 노력이 반영된 문화적 상품에 북미나 유럽의 소비자들이 높은 가치를 매겨주기 때문이지요. 

신시장을 개발하고, 소비자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겁니다. 저는 마케팅 전략가로 살아오면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버거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식의 추상적 논리를 넘어서,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채택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부림사건이란 현대사의 단면을 담고 있고, 그 정치적 맥락을 통해 법의 정신과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꾸 누군가의 이미지를 병치시키기 보다, 이제는 우리의 역사에선 또 다른 엄연한 현실이 되버버린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미주 중앙일보의 영화 보류 기사를 읽고 어찌나 가슴이 놀랐던지요. 이제 2월 7일 개봉에 앞서 많은 분들의 성원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길 기대해봅니다. 그저 지금으로선 걱정되는 건, 이런 영화 한편도 정치적 시선으로 덧입히고 해석해서 툭하면 극장 앞에서 '빨갱이' 운운하며 생떼를 쓰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자칭 어르신들이 외국에도 만만찮게 있다는 것을 봐온터라, 이런 분들이 극장 앞에서 추태 부리지 않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이죠. 하긴 회당 100불의 아르바이트 비를 받으시는 분들이니 그런 행동 하는 걸 뭐라 하기도 참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