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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패션의 인문학 강의후기

패션 큐레이터 2013. 7. 31. 02:23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의 풍경


패션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지요. 제 소신이었고요. 제 강의는 예술의 전당급 아카데미를 제외하고는 방송과 기업강의에 한정된 것이 사실입니다. 항상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멘토의 자격은 없지만,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아무리 어려워도 기회가 되면 하려고 노력을 해왔거든요. 서울시와 대산문화재단이 연계된 미지 일상의 인문학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주축이 된 캠프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다 왔습니다. 


저는 청소년을 만날 때가 좋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계를 묻고 저도 배우게 되죠. 거식증에 걸린 아이들, 연애인의 몸을 따라하느라 아픈 아이들에게 패션을 통해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힘이 납니다. 저는 중학생들에게 고등학교 3년의 수학을 선행학습을 시키느니, 스스로 옷을 고르고 입는 법이나 가르쳤으면 좋겠다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옷을 고르는 일은, 일단 자신의 신체의 변화를 스스로 인지해야 하고, 자기가 입어서 신나고 행복한 빛깔과 실루엣을 골라내는 일입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제가 얻은 작은 기쁨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인문학 캠프나 강의에서 패션을, 그것도 청소년들에게 의식주 중에서 옷의 문화와 철학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아이들에게 무거운 철학적 개념을 선행학습시키듯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우리의 일상에서,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지렛대가 되어야 하고 탄환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그저 남보다 똑똑해 보이는 헛똑똑이로 키우려고 어른들의 사유와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공허합니다. 우리는 툭하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의식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 세가지 기본에 대해서는 당췌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도 그저 식사교육이란 이름으로 예절이나 가르쳐왔지 식재료와 우리의 식음행위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문제들을 짚어내지 못했지요. 아이들이 이해를 못할거라고요? 이런 식의 시각이야 말로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집은 또 어떻습니까? 아파트를 사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집의 가치, 그 집에서 나누어야 할 우리들의 삶과 체험의 값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요? 정서와 친밀의 언어를 가르치기보다, 경쟁의 장과 관련 단어만 가르쳐왔습니다. 


패션의 문화와 인문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옷이 인간의 제 2의 피부임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연예인 옷 따라잡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옷을 입는 이유를, 바로 아이들의 일상과 연결지어서, 한 벌의 옷을 입고 계절이 지나 그 옷을 곱게 접어 서랍장에 정리하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삶을 오롯하게 살아내는 작은 실천임을 알리는 일입니다. 옷을 통해 사물로서의 옷과 관계를 맺고 사회를 나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일. 이것이 아이들의 소중한 삶에서 진정한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임을 알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작금의 스타일리스트란 자들이 말하는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취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해볼 기회를 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두 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제가 강조했던 것들을 일상에서 한번이라도 시도해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이 아이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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