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전시를 준비하며 전시기획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패션 큐레이션이란 영역을 개척하면서, 저술과 번역, 강의와 방송활동에 치중한 탓에, 정작 전시를 통한 소통노력을 하지 못했다. 6월 11일 부터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에서 가방 전시를 연다. 가방 디자이너 조명희 씨와 규방공예 장인들의 손길이 더해져,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핸드백을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 8월에는 성남아트센터에서 현대미술과 패션이 어떤 연금술을 보여줄 수 있는지, 기존의 지겨운 콜라보레이션을 넘어선 전시를 해볼 생각이다. 한국의 디자이너 회고전도 계속 머리를 짜내고 있다. 사진에 걸어놓은 디오르와 인상주의 전도 참 좋다. 외국 박물관을 타진해보고 있다. 패션전시가 많지 않은 이 나라에 좋은 참조가 될 것 같다. 한국에서의 패션 관련 전시는 매우 천편일률이다. 패션 큐레이터는 업계를 대행해서 브랜드의 상업 미학을 드러내는 이가 아니다. 패션이란 물질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과 역사에 대한 사유, 미적 실천을 전시행위를 통해 담아낸다. 그것이 패션 큐레이션이다. 무슨 길거리 패션 사진 몇장을 찍어다가 코디해놓고 가격표 붙여가며 패션 큐레이션 서비스 운운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니 맨날 패션이 싸구려란 소리를 듣는다. 정작 그런 소리를 듣는 자신들은 인지 조차도 못한다는 것. 현대패션처럼 시대정신의 다양성을 담는 렌즈가 없다. 세상은 맨날 인문학을 이야기 해도, 하나같이 A4 한장 반짜리 쪼가리 지식으로 아는 척만 하고 싶을 뿐, 마음껏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고 사유하는 이가 줄어든다. 내가 이 나라의 자칭 인문학 광풍이란 표현을 싫어하는 이유다. 하나같이 읽은 척, 똑똑한 척, 허세쩌는 짓거리만 하고 싶을 뿐, 이러니 산업계 전반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텐데, 참 아쉽다. 이번에 나온 전시도록 Dior 와 인상주의는 디자이너 크리스천 디올의 작품에 용해된 인상주의의 흔적을 찾아 작품과 함께 인상주의 시대와 1960년대를 병치시킨다. 디자이너를 통해 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전 어떤 스타일리스트분이 기획한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여자들의 패션을 다룬 것이었는데 철저한 나열식이다. 스토리를 복구하거나 학예적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당연하다. 기획자가 아는게 없으니 그렇다. 그래놓고 인터뷰에선 뻔뻔스레 제로 베이스로 접근했어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솔직하다. 패션계는 항상 담론이 부족하다고. 그렇다고 대학교수를 시키면 나을까? 그건 더 비참하다. 모든 프로젝트를 자신의 이력서 한줄 넣는 걸로 아는 이들이 부지기수인지라, 요즘은 의상학과 교수들은 문광부에서 조차도 부르지 않는다. 좋은 조짐이다. 그만큼 대학이란 학계와 공무원 사회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뜻이겠지. 치열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오로지 이것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 그래서 목숨거는 사람들. 패션전시를 이런 관점에서 바칠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좋겠다. 나 혼자서 하는 건 참 힘에 부친다. 방송을 하다보니, 사람들은 내게 전시보다 또 다른 방송출연을 요구하기도 하고, 패션 잡지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항상 접근법이 비슷하다. 어떤 물에서 오랜 동안 놀아온 사람들의 질문은, 이미 그 대답도 항상 비슷하다. 창의성이 전무한 판이 된 것이다. 욕이나 늘어놓으려고 이렇게 쓴 건 아니다. 나는 어떤 판에서 오랜동안 시금석의 시간을 버텨온 이들을 존경한다. 분명 이들에게는 첫 마음의 환희가 일상과 생활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들도 알 것이다. 자신의 첫마음을 복구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것을. 나는 이런 이들에게는 오히려 참신하기만 할 뿐, 성실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연민'을 발견한다. 현업에서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이곳에서, 상상력이 고갈되기 쉬운 속도가 빠른 이곳에서, 그래도 버텨온 이들은 '자신과의 꿈에 대한 약속'을 믿는 이들이다. 나도 내가 쓰는 글만큼, 매일 나 자신을 벼리는 존재가 되야겠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런 이들을 발굴하고, 함께 할 것이고 새로운 정신의 모본을 만들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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