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멋진 할머니들의 세상-노년의 스타일은 특권이다

패션 큐레이터 2013. 5. 17. 20:57


이번 화요일, 신세계 백화점 VIP 고객들을 위한 특강에 동참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용을 자꾸 바꾼다. 복식사에 대한 내용도 좋고, 물질문화

도 좋지만, 결국 사물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배우게 되는 건 인간의 면모들이다. 

Advanced Style이란 책을 번역하려고 했고, 출판사와 마지막으로 조율 중이다

지난번에도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올렸었는데, 반응이 좋다보니 요즘 강의

를 할 때도 이 책에 나온 뉴요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책은 사진집이라, 텍스트가 거의 없다. 전직 모델도 있고 

애널리스트도 있고, 다양한 직종군을 갖고 살아온 분들의 모습이며 또한 

가정에서 충실하게 삶을 꾸려온 여자들의 모습도 많다. 물론 남자분들의 패션도 

함께 다룬다. 중요한 건, 우리 사회도 이제 노령화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점, 노령화 사회에

맞추어 시니어 스타일에 대한 일종의 선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절대로 상업화를 

위한 포석이 아니다. 물론 이 또한 공감을 얻으면 발 빠르게 장사로 전환되어 나오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시니어들을 위한 스타일 담론이 흐려지는 건 아닐

것이고, 오히려 사회 내부에 감추어져있거나 간과된 부분을 본다는 뜻일테니.



노년과 노령에 대한 사회학/역사학적 이해를 돕는 책들도 속속 출간

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학자 펫 테인이 쓴 <노년의 역사(글항아리 출간)>을 

읽었다. 노령화 사회의 대두와 함께 노인의 존재와 노년의 삶은 우리 시대의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결국 노년이란 생의 한 주기, 삶의 무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딜가도 동안외모와 젊음에 대한 찬양만이 판칠 뿐

체념과 쇠잔한 몸, 나이들어가는 삶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들이 사회 속에

뿌리 내리질 못했다. 여기엔 다양한 편견들이 자리를 하기 때문이다.



펫 페인에 따르면 근대화 이전의 유럽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결코 수동적

이거나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능동적이고 활동성이 충만한 존재, 가정과 

사회에서 나름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 노후에 자신의 삶을 꾸리려는 자립의 규범과 

이상을 실천해왔던 이들.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깋론 자녀와의 동거 대신 독립주거를 선택하고 

경제적으로도 스스로 자신을 꾸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 사회의 노년층

이란 자녀에 대한 과다한 애정과 그에 대한 보상이 비대칭을 이루며 서로에게 상처와 상처를 추며 

할퀴고 생채기 내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를 가리켜 여전히 '고등어' 혹은 '가시고기'

로 환원되는 신화를 양산하는 게 당연한 양 한 순간 눈물 흘려주는 걸로, 노년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는 우리사회에 여전히다. 이건 분명 문제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과한 애정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 무섭다.

이 사랑이 보상심리로 전환되는 시점이 될 때 벌어질 일들이 무섭다. 

역사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영역은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강의를 통해 

만나는 수많은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멋지게 옷을 입고 다니라고 때아닌 잔소리를 

잘 하는 강사 중 한 명이다. 아이들에게 양보하느라, 입지 못했던 것들, 멋진 색과 스타일과 

실루엣을 입어보라고 조언해 드린다. 모두다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답고 싶은' 욕망에

대해 인정하는 시간이 온다. 그래서 노년분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의외로 숙연해지고, 솔직해지며,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이 문제를 풀려면 받춰줘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지금처럼 여성들이 

직장 다니며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선, 우리는 전통적 가치로서의 엄마

의 확장된 역할을 시어머니/친어머니에게 돌려버리고 만다. 확실한 건 노인들이 이걸 

즐겨 할 거라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게 좋다. 실제로 내 자식의 자식까지 돌보는 

거 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는 할머니들을 자주 봤다. 문제는 그런 할머니들을 껴안을 만큼 

우리사회가 직장여성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만큼 인프라를 갖추고 인식을 바꾸었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바꾸어야 할 문제다. 한국처럼 압축성장의 역사를 가진 나라

에선 노년과 중년,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야 할 세부적인 미감을 각자

만들어 실천하기가 보통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실제로도 그렇고. 글쓰다 보니

나도 답답하고 그렇다. 그만큼 이 땅엔 노년의 스타일이 없는 사회다.



노년은 얼마나 아름다와야 할 당위가 있는 시간일까? 모든 삶의 경험을 다하고

버텨오고, 인내해온 당신안에, 그 내면에 차있는 생각과 무늬와 방식을 세상을 향해 

정작 환하고 찬연하게 선보여야 할 시점인데, 세상은 온통 노인들에겐 '늙다리'취급만 한다.

노년의 스타일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입으로는 노년을 위하는 척 하면서, 아가리로는 노년층을 감싸는 듯 이야기 하면서 정작 이들에게

희생만 요구하고 빼먹을꺼 빼먹는 건 당연하듯 여기는 인간들이 있다면 반성할 일이다. 

그들의 늙음이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듯, 너네가 그들에게 요구할 것이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익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