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관련 외고를 하나 썼다. 많은 매체와 일간지가 패션에 관한 글을 요구한다. 심도 깊은 글을 찾는 독자 층이 생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글을 생산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부족하다는 점. 올해 두 개의 전시와 3권의 책을 내야 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신경써서 외고를 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조선일보에서도 주말판 패션 섹션을 부탁했지만, 개인적인 균형을 잡기도 어려운 판이라, 거의 고사해야 했다. 6월 전시만 끝나면 어떤 매체든 살갑고 멋지게 글을 쓰리라 기대해본다. 물론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겠지만. 일간지 주말판을 위해 매력적인 칼럼을 쓰는 일은 올 하반기로 훌쩍 넘긴다. 주말을 틈타 쉽게 쓸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만나 외고를 하나 써서 보내주었다. 최근 패션에 등장한 유모어, 바로 웃음의 코드를 역사적으로 풀어내는 일이었다. 물질문화의 본질을 알아가려면, 옷에 각인된 인간의 감정과 정서의 흔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부터 살펴야 한다. 그래서 웃음의 이론을 뒤적거리며, 그 역사의 궤적 속에서 인간의 옷을 통해 어떻게 웃음이란 감정의 쾌를 드러냈는지 읽어봤다.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와 바로크와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웃음은 결국 교정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웃음이 도처에 깔린 듯 하지만, 실제로 오장육부가 찟어져라 시원하게 웃음을 지어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포복절도란 표현은 이제 이 낮은 세상을 포복하면서 웃음을 절도당한 시대의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참 무겁기만 하다. 이런 글은 써놓고 나면 항상 이중의 감정에 마음이 상하고 또 한편 결심을 굳히고. 뭐 이런다. 어쩌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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