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서울 컬렉션 때, 한국의 <창>을 가지고 변주했던
디자이너 김수진, 소울팟 브랜드가 블랙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을 위해
한정판 디자인을 내놨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디자인을 참 깔끔하게 뽑아낸다.
한 달전 그녀가 일하고 있는 경리단 길의 스튜디오로 가서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했다.
처음 이 디자이너를 발견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기뻤던 것은 그녀가 보여준 스토리
텔링 능력이었다. 인문학적인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문학과 역사, 철학
에 이르는 다양한 텍스트를 담아, 한 벌의 옷에 녹여내는 성실한
태도에 사실 마음이 갔다고 해야 할 듯 싶다. 나 자신이
워낙 올 블랙을 좋아하기에 룩북의 옷들이 걸린다.
나는 간결한 디자인을 옹호하는 큐레이터다.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을 섞는 맥시멀리즘 보다는, 삶의 조화와 내면의 안정을 위해
심플한 두 가지 색 정도를 준비한다. 올 블랙은 사실 지금같은 계절을 위해선
강력하고 강렬한 색이다. 모든 색을 삼키는 색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린다. 검정
이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에서 구도의 색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디자인 학교를 통해 패션을 공부한 재원이 아니다. 소울팟은
그녀 스스로 독학으로 모든 것을 공부했다고
신인 디자이너들을 발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유학파들도 많고, 그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패거리가
나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식의 움직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주엔 한국패션협회와 문광부가 함께 패션의 융복합
문화상품 개발 회의를 연다. 여기에 자문위원으로 가는데 또 차가운
말들을 늘어놓을까 미리 걱정되기도 한다. 과정상의 문제를 지금껏 지적해왔고
나름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통어해왔지만 변화의 속도는 참 느리다.
모든 색을 삼키는 블랙의 우산 속으로
나 자신을 숨기고 싶은 이유일수도. 그렇다고
패배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가장
강력한 희망을 꿈꿀 것이므로 그녀의 컬렉션라인 중 일부 선별한
아이템과, 시그니쳐 아이템, 그리고 특별히 주목받은 스페셜아이템들만 선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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