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심플한 인생을 위한 실루엣-탑샵 유니크 2013 S/S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3. 2. 20. 22:29


영국의 패션유통체인 탑샵의 디자이너 브랜드 '유니크(UNIQUE)의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을 보고 있다. SPA 패션브랜드로 아직 한국엔 매장이 

없지만, 업계에 따르면 곧 문을 열 예정이란다. 다른 거 보다 영국에서  이 브랜드를 

접하고선, 한 마디로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1964년, 지금은 문을 닫은 백화점 피터 로빈슨

(Peter Robinson)의 젊은 세대를 표적으로 시작한 탑샵은 현재 37개국의 나라에 440여개의 매장을 가진

거대 패션공룡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런칭을 하면 가뜩이나 제로섬게임에 가까운 SPA 전쟁에 

또 다른 기촉제가 될 듯 싶다. SPA 브랜드도 그 형질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영국의 디자인을 무기로 한 브랜드의 매력이 서울에서 얼마나 통할지 궁금하다.



이번 봄/여름 컬렉션은 유독 내 눈을 끌었다. 나 스스로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조율과 절제된 실루엣과 색채를 선호하는 편이기에 

지난 해 이 옷들을 봤을 때, 꼭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뜩이나 패션의 인문학

강의를 다니며 시대 별 복식의 역사를 정리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90년대를 마지막으로 마감을 했고

90년대 패션의 반복이라 불리는 이번 컬렉션이 더욱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지 싶다. 



영국의 전 보그 매거진의 스타일리스트였던 케이트 펠란의 지도 아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유니크한 시각을 선보여왔다. 이번 춘계 컬렉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소는 무엇일까? 작년 런던 바비칸 갤러리(Barbican Gallery)에서 열린 전시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예술로서의 바우하우스'전시였다. 1920년대 건축운동으로 시작된 바우하우스는 이후 인테리어

와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번 전시에도 예술가들의 섬유공예 작품들이 

등장했다. 직물의 겹침효과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간결한 질감에 디자이너들은 매혹되었던 거 

같다. 이번 전시에 나왔던 1927년작 조셉 알버스의 의자들을 보자. 간결함을 근대의 

주요한 미적 가치로 받아들인 이들의 선은 이번 패션 컬렉션에 녹아 있다. 



바우하우스는 철저하게 중세적 길드의 모형을 이상으로 따랐다. 

그 속에서 수공예적 정신의 부활과 장인들의 작업을 근대적 문법에 따라 

풀어가길 원했던 이들이다. 이번 탑샵의 컬렉션은 좋은 디자인은 좋은 삶을 이끈다는

기능주의 미학을 그대로 녹여냈다. 오간자와 실크 같이 도시적 삶의 유연성과 느낌을 발산하는

소재들을 마치 한 채의 집을 짓듯, 정교하게 규격화된 질서를 부여해 옷을 디자인했다. 



실제 신체 보다는 다소 풍성한 느낌의 실루엣이 눈에 띠고

투명과 불투명을 유효적절하게 뒤섞는 감각이 좋다. 



가는 줄무늬에서 시작, 판화방식으로 찍은 다양한 줄 무늬들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방들이 도열된 공공 주택의 선을 닮았다.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카렌 본서는 바우하우스적 이상인 

좋은 디자인의 원칙을 무의식적으로든 옷에 담았던 것. 바우하우스는 

인간의 손이 발산하는 따스함을 당시 발흥하던 기계주의 문명의 규격화와 결합

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런 정신은 샤넬을 비롯한 다양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하면 무엇보다 아르마니의 비구축 재킷을 떠올리고, 미소니의 레이어드와 

선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캘빈 클라인이 등장한 시기다. 인위적인 어깨의 힘을 빼고 자연스런

수트의 착장감이 새로운 느낌의 남성성을 규정하며 등장하던 때란 걸 기억해 본다. 



깔끔한 미니멀리즘, 체크, 금속성의 표면느낌이 나는 소재, 

컬렉션에 중점을 두어 표현한 디자인이다. 앞으로 이 요소들은 반복되어 

컬렉션에 나타날듯 싶다. 여기에 2월 초순이 되면 환하게 피는 미나리아제비꽃의 

노랑과 다소 절제된 분홍, 은색, 진청, 흑과 백색, 이 6가지 색채의 조합에 기반한 디자인이

유니크 브랜드가 추구하는 도시적인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색채기획이 될 것이다.



단순함이란 가치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뺄 것이 없는 상태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원칙도 그렇다. 옷을 입은 인간의 정신도 이 원칙을 따른다. 

깔끔한 미니멀리즘이 디자인에 결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간의 여백을 주는 비대칭의 선도 

있어야 하고, 절제된 만큼, 타인의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장식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번 탑샵의 컬렉션은 이 모든 걸 그래도 왠만큼은 해냈지 싶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