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2013년 S/S 이상봉 컬렉션-런웨이 위의 나비부인들

패션 큐레이터 2012. 11. 12. 06:00


시차를 두고 이번 2013년 S/S년 서울컬렉션의 리뷰를 올리고 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컬렉션을 본 탓에, 디자이너 한명 한명 힘겹게 글을 써서

올려야 하는게 인지상정이건만, 지난 10월 부터 누적된 회사일과 원고작업, 번역이

밀린 탓에 시간을 내어 집중적인 글쓰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정말 현재 나를 둘러싼

옷을 벗고, 탈각의 꿈을 꾸는 존재가 되고 싶다. 이상봉의 봄 여름 컬렉션 테마처럼.



이번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의 테마는 나비다. 사실 나비는 그리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비란 곤충의 실루엣과 상징, 스토리를 사랑한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하나에 모리는 90년대 이미 파리를 공략하며 그녀만의 시그너쳐인 나비를

즐겨썼다. 사람들은 그녀의 나비를 동양의 나비라고 추켜세웠다. 어디 모리 뿐일까? 디자이너에게 나비란 

일종의 상징이다. 어떤 하나의 차원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그런 존재말이다. 



이번 이상봉의 컬렉션을 보면서, 떠올렸던 한 명의 화가가 있다. 조선시대

후기, 철종 때의 화가 남계우다. 그는 나비에 미쳐, 평생을 나비를 묘사하는데 바쳤다.

이름앞에 붙는 애칭도 남나비다. 그는 정교하게 나비를 그리기 위해 항상 자신의 작업 앞에 치열하게

몰입했다. 유리로 만든 그릇에 나비를 잡아 넣고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철저하게 나비의 날개짓을 읽고 해석했다.

남계우가 그린 나비는 너무나도 정교해서 해방이후 나비박사 석주명씨도 37종의 나비를 그의 그림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현미경으로 바라본 듯, 정밀하게 나비의 현상학을 그린 것이다.



화가가 그린 나비의 정교함은 오트 쿠튀르의 정교함과 연결된다. 그림 한장을 뚫어져라 

보다보니, 종이위를 꿰뚫고 우화등선하는 나비들의 날개짓이 보인다.



의령남씨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남계우는 당시 소론의 영수였던

남구만의 5대손이었으나, 노론이 모든 것을 쥐고 흔들던 시대, 그에게 관직은

쉽게 쥐어지지 않았다. 56세가 되어 관직에 올랐지만 그는 초야에서 나비에 흠뻑 빠져

살았다. 예술가는 항상 시대의 위기를 온 몸으로 느낀다. 그 위기는 명료한 언어라기 보다는 동물적

감각을 닮았기에, 동물의 형상을 하고 태어나기도 한다. 남계우의 나비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이번 이상봉 컬렉션에서 본 나비들은 단순히 나비를 프린트로 찍은 것이

아니라, 나비의 날개짓과 그 순간을 도상화 한 것들이 많았다. 그만큼 직접적인 

언급보다, 테마를 위해 소재를 변용시킨 것이 많았다는 점에서, 디자이너가 뽑아낸 실루엣

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다. 더욱 엘레강스하고 단정하게 절제된 면모가 녹아들었다.



나비는 항상 성적 교합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꽃을 찾아가는 나비의

날개짓은 그 어느 때보다 에로틱한 상징이다. 나비는 동 서양을 통털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인간과 인간이 교합하고 그 결과로 껍질을 벗고 새로운 형질의 

존재로 태어나는 그러한 순간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성의학의 권위자인 마리 스톱스의 표현을 

빌어본다. "나비는 배가 가득 차더라도 곧 꽃에서 날아가지 않는다. 꽃잎 하나에 붙어 꿀에 침을 꽂은 채

편안하게 잠든다. 평안과 조화, 나비는 꿀의 생명을 얻고, 꽃도 나비의 영혼을 녹여 다소곳이 받아들인다. 정답게

붙었다가 날이 밝음과 동시에 날개를 펴서 날아가기도 하고, 조용히 나뭇가지 끝을 맴돌기도 한다."



이번 컬렉션에는 하운드 투스 체크의 도상을 나비의 날개짓과

연결지어 프린트해낸 작품들이 많았다. 그만큼 서양과 동양의 요소를 

적절하게 섞어 표현하려는 디자이너의 노력이 돋보였던 부분이었다. 옷과 함께

우산, 레인코트, 힐까지 함께 구조화된 런웨이의 장을 아늑하게 채웠다.



코코 샤넬은 패션은 나비이면서 유충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옷은 그런 것이라고. 아침에는 유충처럼 기어들어가지만

밤에는 껍질을 벗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다고 말이다. 옷이 가진 유혹의 속성을

그녀처럼 솔직하게, 그러나 우아하게 돌직구를 던지듯 표현한 디자이너가 있을까? 나비의 

세계는 무엇보다 '한 순간의 명멸하는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로 디자이너에게

비춰진 것이다. 런웨이 위를 거니는 옷의 운명도 그럴 것이다. 



레드와 라임, 반투명의 소재를 사용해서 이러한 격정의 순간들을

차분하게 풀어낸 점도 눈에 들어왔다. 



이번 런웨이에서 가장 압권의 순간은 천둥 소리와 함께 꽃의 깨어남과

빗물 소리, 그 사이로 버거운 날개짓을 하는 나비들의 환영이 런웨이를 살포시 

걸어갈 때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순간이라,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항상 패션은 변화를

위한 껍질을 벗기를 원한다. 일년에 2번, 작게는 55주라는 좁은 시간의 격자 위에서 패션은 인간의

변화를 돕는다. 새로운 옷은 새로운 정체성의 가면이 되어주는 것이다. 런웨이 위의 

나비부인들은,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일테니. 변화를 꿈꾸는 자, 패션을 

통해 나비의 우화등선을 꿈꾸어 볼 일이다. 아듀.....



4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