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영원한 이유-2013년 F/W 박윤정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3. 4. 3. 06:00


2013년 F/W 서울 패션위크와 컬렉션이 마무리 되었다. 이번 패션위크는 

지난 달 25일부터 31일까지, 여의도 IFC몰과 한남동의 블루스퀘어에서 이원화되어 

열렸다. 지하철로 지난 컬렉션에 비해 좀더 가까워진 동선을 구축하긴 했지만 여전히 다니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게 이끄는 건 그들의 열정의 몫이다. 

29일 금요일 1시 반, 부랴부랴 도착, 패션 디자이너 박윤정의 컬렉션을 기다렸다. 구두 디자이너

겸비와의 협업도 함께 볼 수 있어 그 매력을 더했다. 두 사람이야 원래 디자이너 이신우

선생님 밑에서 오래 호흡을 맞추었던 사이다. 기대감 보단, 안정감을 느낄 조합.



에드바르트 뭉크의 여인 삼대 『Three Stages of Woman』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뭉크는 여인의 섹슈얼리티가 영원한 신비의 길이라고 믿었던 작가다. 19세기 

소비주의의 발흥과 백화점의 탄생 속, 여성들은 드디어 패션의 민주화, 그 첫 세대를 걸었다. 

여성은 성스럽고, 또 한편으로 매춘부적 모습으로, 불행하게 남성권력에 의해 버려진 존재로, 삼면의 

가치를 가진 존재로 뭉크에겐 보여졌다. 성자와 매춘부, 유폐된 여인의 이미지는 뭉크의 예술세계의 주요한 

세 가지 모티브로 등장한다. 바로 섹슈얼리티와 수태능력, 죽음이 그것이다. 이 힘은 일종의 성좌

처럼 긴밀하고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요소들의 힘을 통해 여성성이 구축된다고 

보았던 이가 뭉크다. 그의 작품 속에서 강력하게 묘사되는 내면의 정경들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여인삼대> 1895년 캔버스에 유채


이 그림은 1899년의 <생명의 춤 Dance of Life>의 전조를 이룬다. 이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 속에선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들은 각 세대를 표현한다. 

왼편의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여인은 사춘기, 순백의 환상을 담는다. 그녀는 지금 꿈을 꾸듯 

바다를 보고 있다. 중간에 있는 여자는 중년의 여인이다. 명확하게 말하면 중년이라기 보다는 완숙한 

여인의 자태일 것이다. 두 다리를 벌린 채 벌거벗은 여인의 시선은 관람객을 향한다. 그녀의 응시는 무엇보다

유혹과 도발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인간의 영원함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생식력의 은유인 것이다.

맨 오른쪽, 어두운 의상을 입은 여인은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직면한 불투명의 존재, 노년의 모습이다. 그 사이를 가르는 붉은 색 두 나무

는 질투를 상징한다고 한다. 인간의 세대, 그 격자를 가로지르는 감정이다.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색감의 조화는 철저하게 그림 속 은유의 의미를 따라

조합되고 완성된다. 백색과 노랑, 빨강, 소녀가 바라보는 바다의 청색에 이르기까지.

그래서인지 런웨이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옷은, 일종의 이야기를 풀어가듯, 색의 변화를 통해

컬렉션의 의미를 촘촘하게 짜깁어간다. 단순하게 작품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패션

드라마의 연출을 위해, 정신의 직조를 통해 만들어진 옷이 런웨이를 걷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 속 사춘기 소녀의 백색 드레스는 약간 회색을 

머금은 색으로 재현된다. 이는 디자이너 박윤정의 작업노트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영화 <신의 소녀들>을 참조했습니다. 시각적

으로는 마른 흙의 색감을 직물과 소재에, 청각적으로는 수녀원의 웅웅거리는 느낌과 우울하고 

밑으로 가라앉는 외경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1950년대 디자이너 발렌시아가의 투박한 라운드 

실루엣과 지난 시즌 선보인 Spiral Line(인체의 척추선)을 조합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컬렉션에 등장한 마른 흙의 색감은 바로 영화적 상상력을 풀어낸 것이었다.

검정과 붉음, 두 체계의 색과 조화를 이루는 균형감각은 놀랍다.



에드바르트 뭉크 <생명의 춤> 1899년, 캔버스에 유채


다시 뭉크로 돌아가보면, 여인삼대를 시작으로 그가 완성한 <생명의 춤>은 

뭉크가 꿈꾼 여인의 세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아니 인간의 생명과 그 원천에 대한 

연구가 완성된 것이다. 여기서도 백색과 적색, 흑색은 인간의 삶을 이끄는 삼원색이다. 

박윤정 컬렉션의 주요 색채와 실루엣은 이 그림 속 여인들을 감싸 안는 힘에 대한 재해석이다. 

박윤정의 작품에는 인간의 세 단계와 그 대표적 속성의 빛을 한 자리에 모아, 인간의 

꿈과 욕망은 언제나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 영혼의 불변함이다. 



인간은 척추를 통해 곧게 선다. 인간에게 중력의 힘을 버티며 서있도록

이끄는 유일한 힘의 근저다. 지난 시즌, 박윤정은 인간의 척추선을 형상화한 독특한

하의 실루엣을 선보였다. 상의는 강조되고, 하의는 다소 중력의 힘 속에 빨려들듯 사라져가는

느낌이 강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실존을 감싸고 떠받치려고 애쓰는 노력이 역력하다.

놀라왔던 것은, 사진 상으로 볼 수 없는 옷의 뒤태였다. 패션쇼 제일 앞 줄에서 

하의들의 디테일을 면민하게 살펴봤다. 섬세한 주름들은 마냥 풀어지지

않고 촘촘하게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여성의 생식력을 표현하는 

둔부를 아련하게 감싸안는다. 너무 예쁜 실루엣이었다. 



이번 컬렉션에는 바로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들을 섬세한 

실크 위에 아플리케 자수로 처리한 작품도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오간자와

실크의 재질감으로 표현한 가벼움, 색채를 통해 드러낸 무게감, 이원적인 두 개의 힘을

균형잡으려는 디자이너의 노력이 돋보였다. 이제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속의 작은 세부를 완성

해가는 화가의 붓터치를 재단과 디자인으로 환원시킨 디자이너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앉았던 줄에서 바로 맞은 편에 배우 김혜자 선생님이 앉으셨다.

은은한 자태, 어찌보면 이번 컬렉션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주는 여성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역할 모델이 아닐까 싶다. 런웨이에 온 다른 배우들의 인사가 이어지는 통에 인사

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컬렉션을 매우 조심스레,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봤다. 박윤정 선생은 국민배우가 선택한 디자이너다.



탈랜트 이수경씨와 함께 한 디자이너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알리와 김태우씨도

함께 했다. <생명의 춤>은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들고, 입고, 유행시키는 한 벌의 옷과 이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에 이미 들어있다. 삶을 지탱시키는 찬연한 패션의 힘은 그래서 열정이다. 패션은 패션

이다(Fashion Is Passion)이란 말은 아마도 이런 이유로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난 그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