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패션 사진가 팀 워커의 전시 도록 Storyteller를 샀다.
1970년생인 이 남자, 상상력이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단순한 패션 화보의
틀을 깨고 신랄한 즐거움과 묵직한 묵상의 근거를 사진을 통해 우리들에게 선보인다.
패션 매거진『VOGUE』의 고정 작가로서 매달, 지금껏 십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작품들은
연극적인 무대와 로맨틱한 모티프와 서사, 중세적 특징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 풀어냈다. 그는 패션을 중세시절의 로망스로 돌려놓은 작가다. 그는
현재 영화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사진 작업의 연장선에서 봐야한다.
2012년 소머셋 하우스에서 열린 그의 사진전 스토리텔러(STORYTELLER)는
패션 사진작가로서 그의 양식과 이야기 전개방식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런던에서 프리랜서로 어시스턴트 업무를 보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사진가
리처드 아베든의 전업 어시스턴트가 된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영국의 주요
신문사들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초상사진을 찍었다. 25살의 나이에 영국판 보그의
패션 스토리를 담당하는 포토그라퍼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의 작업들은 2000년대 초반, 보그의 정체성을 새롭게
개혁하는 십자군으로서, 기존의 성격을 상당히 바꿔버렸다.
프랑스 바게트 빵으로 만든 실물크기의 비행기와 첼로를 연주하는 '
거대한 곤충. 한 마디로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무대의 중심에 그가 찍은
패션 사진들이 펼쳐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의 사진은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를 패션의 실제 양식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연극적 구성과 함께 돋보이는 빅터 앤 롤프의 의상을 보라
그의 드라마적 연출과 사진작업이 있었기에 디자이너의 혼이 잘 각인되었으리라
그는 특히 초상사진으로 유명한데, 패션계의 유명한 디자이너와 모델, 배우들을
렌즈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도 하얀 담벼락을 배경으로 고글을 쓰고 있는 배우 틸다 스윈턴과
두 개의 담배를 하나는 자신의 입 속에, 또 다른 하나는 디자이너가 기대고 있는 해골 입 속에 넣고 찍은
작고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모습도 인상깊다. 영국의 성격파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는
여왕으로 옷을 입고 나와서 코카콜라를 마신다. 초상사진들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그는 베니티 패어지의 사진을 담당했던 애니 레이보비츠처럼
그의 능력은 마법의 세계를 드러내는 듯한 세트를 만들고 완벽한 상상력
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 속에서 옷을 드러낸다. 패션은 초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
갖힌 수인처럼, 포박당한 듯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비가시적인 강력한 힘 때문에 패션은
지금껏 여인들의 몸을 주물러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사실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1950년대 본격적으로 패션 부문에서 이런 시도가 시작되었다. 리처드 아베든은
일련의 패션 사진을 이용, 허구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영화 <화니 페이스>의
오드리 햅번을 이용,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배경을 삽입하여 패션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상호텍스트적인 구성이다.
이걸 빵으로 만들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원래 이 비행기는 2009년
영국판 보그 촬영을 하면서 사용했던 것을 모형으로 만든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로열 에어포스의 주요 기종이다. 흔히 스핏파이어란 별칭으로 불렀다.
화보를 만들면서 모델 릴리 로널드슨은 비행기 날개 한쪽에 앉았다고 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사진사가인 로빈 뮐은 팀 워커의 작업을 가리켜
"무성영화에서 가져온 스틸필름" 같다고 말했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앞 다두어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옷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들은 그의 사진 작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패션 사진은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상업사진으로 인식된다.
대학 사진과를 봐도 그렇다. 상업사진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으로 패션과
뷰티를 뽑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패션의 속살을 드러내는 다양한 이야기들, 철학적인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당한다는 점이다. 팀 워커의 패션 사진작업은 우리들에게 일종의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패션이 예술인가? 그렇다면 예술의 세계 속에서 패션은 어디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닐 것이다. 일년에 두번 패션이
세상을 유혹하는 방식을 상업/예술로 두부 자르듯 나누는 것이 어렵듯 말이다.
모호하게 경계선 위를 나는 사진들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건 이런 이유다.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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