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오트 쿠튀르를 기록하다-사진작가 레기나 르랑의 작품들

패션 큐레이터 2013. 1. 20. 01:44


지나간 시간들은 아름답다. 아니 사람들은 그 시간에 유독 아름다움을 

덧씌우는 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세대와 시간의 앙금들은 지금 부산한 현실보다

더 명징하고 순수하다고, 그런 감정을 투사하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전에

나온 패션 사진 속 옷과 여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아니 분위기를 압도한다.

여성의 몸이, 패션이 가장 아름답게 조형된 시기 1950년대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작가 레기나 르랑의 도록을 하나 샀다. 제목은『우아한 세계』다.

그녀는 오트쿠튀르의 황금시기, 바로 1950년대와 60년대의 패션을 찍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랑하는 작가였다. 1909년 독일 스튜트가루트에서 출생하여 스튜트가르트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이후 베를린의 예술교육학교에서 수학했다. 1932년 

그녀는 파리로 거처를 옮긴 후, 패션 매거진 보그와 디 다메지의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남서부 유럽의 다양한 로케이션 장소를 다니며 여행과 

패션을 기록하는 시대의 붓이 된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디오르와 카르댕, 이브 생 로랑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옷을 입고 찍은 50년대 사진이다.

패션 디자이너 특유의 화려한 프린팅이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영화 속 패션 강의를 할 때였다.

그때 수업을 듣던 꽤 많은 분들 중에 대학에서 패션을 가르치는 분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지적하는 것이 1950년대의 패션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여성사적 관점에서, 적어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선 이 시기는 여성들의 삶이 다시 한번 남성들

의 시선으로 재단되고 가정의 미덕을 배우고,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로 퇴화된 

시기이다. 패션은 어찌보면 그런 퇴행을 위해 한 몫을 했던 몹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디자이너의 옷 앞에서 입 다물지 못한다.

예술가이자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사진작가인 언니를 

둔 어머니는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된 존재였을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정확한 구도와 시적인 유동성,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델과 최상의 

패션이 하나의 몸을 이룬 완벽한 세계다. 그녀의 저 우아한 세계는 당시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하려는 포토 저널리즘의 새로운 방식과 문법을 말해준다. 결코 패션만을 

찍은 사진이 아니란 점이다. 지금 우리에겐 캐캐묵은 것처럼 보여지는 조명과 포즈, 표정

이 모든 것들이 그 때에는 은근히 도발적이고, 한편으로는 남성 가부장제의 세계

에서 여성의 미덕을 강요당하고 내면화 하는 여성들에게 꿈과 여행, 

강력한 자유의 이념을 심는 작은 프로파간다였다는 점이다. 


1950년대의 대표적인 패션 실루엣이나 디테일에 대한 설명을 잠시 

미루더라도, 자수를 비롯한 오트쿠튀르의 전성기에 사용된 디테일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그녀의 존재는 참 고맙게 여겨진다. 


오트쿠튀르는 디오르의 말처럼, 변혁을 꿈꾸는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기본일까? 70년대 이후 급속도로 산업화와 패션의 대중화 속에서 무너져

간 영역이지만, 오트 쿠튀르는 우리에게 여전히 한 벌의 옷을 힘겹게 만들고, 그 우아함을

자랑하던 한 시대의 외피를, 표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그녀의 포토 저널리즘을

사랑하는 이유다. 패션이 인간을 끊임없이 매혹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진

이기에.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하고 환상을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기에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