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한 벌의 옷이 패션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패션 큐레이터 2012. 7. 7. 05:01


 


이번 목요일, 패션 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서울패션위크와 함께 열리는 대학패션위크와 패션 경영대회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요. 패션위크 주간과 맞물려  Blossom in Seoul이란 테마로 열린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기업 내 인턴십 제공을 비롯한 다양한 기회의 창을 열어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자문위원 성격으로 가게 된 것인데, 여기에 대한 후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오늘 포스팅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땅에 넘쳐나는 의상학/의류학과의 숫자에 비해, 담론과 디자인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들과 커리큘럼의 문제입니다


이런 마음의 숙제를 풀기 위해 이번달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에는 20권 남짓의 책이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서 두 권의 교과서를 소개합니다. Beyond Design은 어패럴 제품 생산의 과정과 현재 시점에서의 최첨단 기술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한 벌의 옷이란 것도 결국은 집단적인 구매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로 형성되는 만큼, 결국 구매와 대칭의 관계에 있는 '생산'이란 기제를 통과해야 합니다. 


하여튼 이 책은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중에서 생산이란 관점을 유지하면서 단계 별 필요한 지식들을 잘 정리해 놨습니다. 생산이란 건 결국 소비를 위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제품을 적절한 가격으로 시장에 내어놓기 위해 우선되어야 할 과정입니다. 한 권의 무거운 생산관리 책을 보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저 또한 제품개발에 몸을 담았습니다만 전자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은 패션의 논리와 다를게 없습니다. 특히 


생산이란 관점으로 가게 되면 제품개발의 경제성을 따져묻는 부분이 나오지요. 이건 일반 디자이너나 혹은 중대형 규모로 패션회사를 이끄는 이들이나 모두 뼛속 깊숙이 이해해야 하는 일종의 정신의 태도입니다. 제조 감안 설계(Design for Manufacturing)란 것이 있습니다. 기업 내의 다양한 팀이 이 디자인 공정을 둘러싸고 서로 철저하게 협업을 합니다. 

제조원가를 산정하고 부품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식을 찾고 조립비용을 줄이고 생산 지원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고려합니다. 

 



제조원가를 산정하고 부품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식을 찾고 조립비용을 줄이고 생산 지원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고려합니다


저는 항상 이런 제조와 관련된 문제를 삶의 문제로 끄집어 당겨서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해왔던 경영도 비단 기업을 운영하는 것만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았습니다. 한 벌의 옷을 만드는 것이나 철학자의 견고한 생각의 체계를 공부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생산 공정 하나하나가 태어나는데도, 철학자들이 텍스트를 읽고 타인의 생각을 공박하며 하나의 아이디어를 잉태하는 '치열함'이 그대로 배어납니다. 그걸 읽어내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함께 하는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경영자가 되고 디자이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퍼 하나를 다는 것, 단추를 다는 것, 직물과 직물을 대고 그 선을 따라 봉제하는 일, 그렇게 인간의 몸에 맞는 한 벌의 옷을 만들면서 저는 한 채의 집을 짓는 일을 생각합니다. 최근 정림건축문화재단과 함께 열었던 <건축의 비건축, 비건축의 건축> 포럼을 하면서 시종일관 느낀 것이기도 했고요. 한 벌의 옷을 짓는 일, 제대로 짓는 일, 마음에 들게 짓는 일, 되도록이면 비용을 줄여서 짓는 일. 이 문제와 다를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어떤 하나의 이치를 깨달으며 세상의 다른 요소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저는 패션을 통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생산관련 용어들을 정리해 놓은 제니스 부보니아의 <Apparel Production and Process>입니다. 생산기술 관련 용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놨습니다. 최근 패스트 패션이 창궐하면서 패션관련 생산에도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용어와 어휘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죠. 학생들과 업계 종사자 분들을 위해 이러한 패션계 내부의 변화를 읽어보기엔 사실 잘 디자인된 용어집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여기에 너무 매이다 보면 얄팍함을 벗어던지기는 어렵게 되긴 하지만 말이에요.


생산이란 결국 다양한 힘들의 시너지로 이뤄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의 주름을 펴는 일. 그것이 진정한 패션업계의 리더가 되겠죠. 

우리가 그 집을 얼마나 튼튼하게 짓느냐, 빨리 짓느냐, 마음에 들게 짓느냐의 문제를 옷으로 환원해보면 은근히 해결되는 게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