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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출연후기-방송 전 5분 떨림의 시간들

패션 큐레이터 2012. 12. 28. 20:44


SBS 특별 기획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오늘은 지나간 기억을 되살려 당시의 즐거웠던 일들, 겪은 것들을 한번 

편안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청담동 앨리스>란 드라마가 처음 런칭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기대가 컸습니다. 저술, 방송 및 강의를 통해 이 땅의 새로운 스타일

의 철학과 복식미학을 가르쳐온 제겐 한편의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가 제가 지속적으로 말해온

부분들을 다루기에, 적어도 이 땅에서 럭셔리란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을 얼마나 다룰 수 있을지 

궁금했던게 사실이었죠. 이번 출연은 방송작가협회에 2년 내내 강의를 나간 인연이 깊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청담동 앨리스를 쓰는 두 명의 작가분이 실제로 지난 작가협회 특강에서 

제 강의를 접하고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을 얻으셨다고 하더라구요. 힘이 났습니다.



드라마 구성을 위해 한 컷 한 컷 정교하게 만들어낸 것도 참 좋았습니다.

제가 나온 씬은 아르테미스에서 VVIP 회원들을 위해 여는 만찬 내의 아트토크 강사

로 나온 것이죠. 실제로 저는 아트토크를 많이 합니다. 디자인 멘토에서, 해외명품 브랜드의

회원분을 상대로 복식사와 미학, 무엇보다 럭셔리의 소비와 관련된 철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테마의 

강의를 진행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방송 드라마 속 모습이지만, 꽤나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박시후 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에서, 벽면에도 포스터가 붙어있더라구요.



이날 촬영이 진행된 날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일찍

선거를 마치고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촬영이 있는 상암동 비즈센터로 

갔습니다. 오후 3시부터 촬영이 있을거라는 조연출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갔지요.

지난번 워커힐 W 호텔에서 씬을 촬영하던 날, 조연출을 만나 드라마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제가 이날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지 뭐에요. 그래도 집이 워커힐인데, 이날 따라 몸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촬영있던 날, 드디어 문근영씨를 만났네요. 뒷 모습이 참 고와요. 목이 말라

하길래 제가 막 딴 음료수를 권하기도 했답니다. 어린시절 모습부터 지켜봐와서 그런지

여전히 아역의 느낌이 강할 줄 알았는데, 문근영이란 배우, 이제는 성인의 모습이

더 강하게 배어나오더라구요. 흑옥소재의 커스튬 주얼리도 눈에 들어오네요. 



자 이제 제가 나갈 차례입니다. 제 촬영분이 가장 마지막 파티씬에 있다보니

오후 3시부터 기다린 촬영은 밤 12시가 되어서야 찍게 되었습니다. 원래 영화사에서 

제작부 생활도 해본 터라, 촬영장에서 한 씬을 찍기 위해 배우들이 기다리는 지 잘 알곤 있지만

이날은 그래도 정말 오래 기다린 느낌이 드는 거에요. 아트토크를 진행한다는 대사를 하는

 이분, 저는 처음에 배우인줄 알았는데요. 알고보니 SBS 홍보실에서 일하시는 분이

더라구요. 드라마 홍보기사 쓰시러 현장에 갔다가 출연도 자주 하신다네요.



실제로 나온 분량 시간은 30초 가량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 촬영에서는 

그리스적 엘레강스의 의미며, 콜라보레이션의 철학에 대해 꽤 긴 강의를 했습니다.

저는 청담동 앨리스란 드라마가 꼭 '청담동 스타일'로 표현되는 특정한 스타일의 본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룩의 미학을 한번쯤은 진중하게 건들여주길 기대합니다. 우리사회가

지속적으로 해외명품 소비에 광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이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키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더라구요.

안그래도 촬영갔던 날, 제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신고전주의 패션에 대한

몇 개의 단상을 인용해서 극에 써도 되느냐고 작가분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저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드라마를 통해 생각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믿고 싶어요.



인기 드라마의 힘이 세긴 한가 봅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저는 꽤나 방송출연을 자주 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같은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내용들은 여전히 유튜브에서 조회수도 높구요. 그렇다고 해서 방송을 보고 친구에게 전화가

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8회에서 얼굴을 비취기도 전에, 7회차 방송에서 박시후씨가 제 이름을 거론하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를 이야기하자마자, 그 대사를 듣고 제 생각이 났다며 오랜 시절 잊고 있던 친구들

마저도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걸 보면, 정말 이 나라의 드라마 사랑은 가늠하기가 어렵더군요.



평소에 강의하듯, 편하게 했습니다. 다행히 노컷 없이 바로 끝냈습니다

오랜만에 패션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보게 되어서 저로서는

기쁩니다. 앞으로 하게 될 장옥정이란 가제의 드라마도 조선 시대의 패션 디자이너 역할을

하던 침선나인인 장옥정(역사에선 장희빈으로 불리죠)의 삶을 다룬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만큼 

패션이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는 걸 조금씩 증명하게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내년에는 저도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을 소재로 한 다른 연극한편을 올려볼까 준비 중입니다.



 올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를 통해 패션의 

내밀한 향과 상복의 의미, 옷과 관계맺는 인간의 정서와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는데요. 다음 작품에서는 눈과 귀가 시원해질 만한 멋진 

작품으로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청담동 앨리스란 드라마가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사회에서의 스타일의 문제를 한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봅니다. 


청담동 앨리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