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도슨트 후기-패션에 기호학이 필요한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2. 12. 21. 04:24


대구 가톨릭대학교 의상학과 학생들이 서울에 왔습니다.

방학을 맞아 백스테이지의 핸드백 전시를 직접 눈에 담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다보니 아침일찍 KTX를 타고 서울로 와서 

다양한 전시들을 보고 내려갈 예정이라는군요. 그만큼 메트로폴리스 서울은 문화적

집중이 이뤄진 곳입니다. 문화자본이 모여있기에 지방은 그 혜택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죠. 그래도 부지런하게 서울에 와서 패션관련 

전시들을 찾아서 보고, 리움에 가서 아니쉬 카푸어 전도 보고 내려갔다네요. 

최근 팀 버튼 전시를 비롯하여 좋은 전시들이 쏟아지고 있다보니 

한꺼번에 몰아서 다 보고 갔습니다. 이러기도 쉽지 않죠.



핸드백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백 스테이지는 제가

박물관의 탄생에서 부터 워낙 좋아했던 공간이라, 자청해서 무료로 

도슨트를 많이 했습니다. 적어도 학생들에게는요. 최근엔 국내 의류회사의

프로젝트를 위해 갓을 짜는 장인을 모시고 서구의 핸드백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공간은 350여개의 역사적 핸드백을 모아놓은 곳이지만 단순히

핸드백을 전시한 곳은 아닐 것입니다. 0914 자체 브랜드는 이 역사적 핸드백에서 가져온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대로 끌어내 만든 제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축적

이 아니라, 시대의 미감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고, 디자인을 위한 가이드가 된다는 

점을 이 박물관은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1930-50년대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져서,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당시의 핸드백을 보고 있다면 자체로 사유의 레퍼런스를 찾게되요



서구의 디자이너들이 제품 하나를 만들 때, 접근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도

박물관의 소장품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생각의 방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제가

도슨트를 하면서 단순하게 역사적인 오브제에 대한 설명 이외에도 디자인 전개에서, 역사적 

레퍼런스를 현대란 시점으로 가지고 와서 사용하는 법이나, 그 과정에서 새롭게 개편해야 하는 디자인

감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핸드백 박물관에 있는 1912년의 패션 일러스트 작품에서

부터 위에서 보시는 것 같이 다양한 프레임의 모양들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죠

우리는 제품을 기호학적으로 대상을 해체하고 풀이해서 읽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현재 한국의 의상학과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기호학의 수준을 제가 압니다. 

반성들 하셔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수준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서야 합니다. 

서구의 미감을 전유하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틀로서의 기호학적 사유의 재발견이어야 합니다.



핸드백의 발전은 패션의 역사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재료와 소재의 역사, 기법의 발전사 또한 가방의 역사 중 일부로서 

소중하게 다뤄야 하고 정리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큐레이션이 필요한 이유지요.

이런 내용들을 비롯하여 가방 하나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이 인간의 확장에 일부임을 

말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한 벌의 옷과 소품들, 액세서리, 화장품, 보석 등 다양한

패션의 오브제들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오가며 우리를 완성하는 오브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고요. 우리의 삶과, 정서적 태도와 입장과 연결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도슨트를 마치고 학생들과 밥을 먹으러 갔는데, 함께 했던 지도교수님이

총장님 선물이라면서 멋진 와인을 하나 주시고 갔어요. 2014년이 대구 가톨릭 대학교

100주년이 되는 해에요. 그 해를 기념하면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와인 선물 받으니

기분이 좋아요. 시간에 따라 숙성되는 멋이 있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이런 선물을 좋아하죠.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젊음에 취하고,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 올해 두 권의 

책을 마치고 내년에는 연달아 또 세 권의 책을 쓰고 두 권의 책을 번역합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또 나눌 수 있어 또 한해가 저물어가도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