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비오는 일요일, 시몬느 핸드백 뮤지엄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2. 11. 6. 16:53


언제부터인가 일요일이 더욱 바빠졌습니다. 늦가을 우기로 접어든 

듯한 무거운 하늘을 배경으로, 가로수길에 나섰지요. 시몬느 핸드백 뮤지엄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300여개의 역사적 핸드백을 하나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국학자

들이 써놓은 도록의 내용을 상세하게 읽고 공부하지만 여전히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핸드백을 하나씩 찬찬히 뜯어봅니다. 마치 사람을 해부하듯 말이에요

가방은 인간을 닮았습니다. 안감과 겉감, 재질, 여밈 등 모든 요소들이 인간이

외부를 향해 보여주는 외양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핸드백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용품들을 담는 그릇일테니 말이에요.

그릇을 소중하게 깨지지 않도록 읽어보는 일은 여자를 읽는 일과 같죠



스터디를 마치고 나서, 뮤지엄 큐레이터와 점심을 했습니다.

언제와도 이곳이 좋은 이유는, 사실 가로수길은 언제부터인가 상업화의

일로를 걸으면서 정작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는 경리단 길을 비롯해 점차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온통 카페골목만 들어차는 요즘, 그래도 넉넉하게 앉아서 생각하고

차 마시며, 샵에 들러 핸드백 관련 책들 살펴보기에도 좋은 곳이라 이곳의

카페에 자주 들릅니다. 돌로 만든 핸드백 조형들도 재미있고요. 



최근 발간된 디어 매거진을 한 부 들고 갔습니다. 큐레이터를 만나

전달해주고 싶었거든요. 제 인터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제가 박은관 회장님을

언급한 부분이 나오거든요. 모카향 커피 마시며 페이지를 읽으며 이 매체의 필요서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디어 매거진은 저의 제자들이 만든 매체입니다. 광고가 일절 없습니다.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패션의 저류, 낮은 세계와 잊혀질 수 있는 세계를 기억하기 위해 각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영문과 국문으로 담았습니다. 니트를 다루며 역사와 편직기계

각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었지요. 저는 이런 매거진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던 사람입니다. 좋은 잡지가 끊어지지 않고 발행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본이지요. 제가 그 몫을 해보려고 현재 노력중이고요.



일요일 오후에도 공방을 지키고 계신 실장님 워크샵 모습도 

사진기에 담아봅니다. 20년 넘게 가죽작업을 하신 분들이라, 정말 실무에

뛰어나시기도 하고, 가죽에 대해 물어보면 뭐든 시원하게 답변해주시는 게 저는 좋아요.



제가 요즘 F.I.T 의 패션디자인과 교수가 쓴 가죽 디자인 책을

번역하려고 준비를 하다보니, 가장 큰 문제가 용어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항상 신규영역을 번역할 때 애를 먹는게 용어의 문제입니다. 학계가

모여서 이 부분을 처리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수님들은 번역을 워낙 꺼리는 데다, 한곳에 모여

현업과 아카데미를 연결할 생각을 하지 않죠. 그렇다 보니 용어는 항상 딴 곳으로 샙니다.

이런 부분들을 고치려고 용어들을 통례화 하는 것이죠. 저의 고생길이 훤한 거죠.



실패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수많은 색실들을 담아놓은 저 실패처럼 

나는 찬연하게 실패하리라. 나는 그저 한 가지 빛깔로 저 패션이란 세계에 작은 

자수 하나를 남기는 것일 뿐. 내가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고요. 



신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가방들도 구경해봅니다.

요즘은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제게 자신들이 만든 것들을 보러 오라며 쪽지를 주는 분들이 늘었어요.



트위터로 저를 팔로우 한 디자이너의 작품이더군요. 

깔끔하게 소재감이 좋은 편안한 가방입니다.



옷처럼 착용할 수 있는 백팩을 만든 윤세나란 작가의 작업도 즐거웠습니다.

시간을 내어 가죽공방이나 아님, 이곳 시몬느에서 하는 핸드백 제작과정을 배워볼까 

합니다. 다른 건 아니고 가죽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오브제를 설명하는 촉감을 비롯한 감성의

언어를 확장하기 위해서죠.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충족하는 패션의 사물들을 보고 묘사할 때 정확한 용어와 

더불어 형용사를 사용하는게 필요하거든요. 저는 오랜동안 소리를 묘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저역, 중역, 고역에 나누어 

각 음질의 특징들을 해석하는 일을 해봤죠. 포도주를 설명할 때도 다양한 형용사가 필요하듯, 핸드백도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정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죠. 언어가 정교해지면, 패션에 대한 우리의 

감성도 더욱 벼리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능성에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