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의 미래를 생각하며...... 서울패션위크가 끝났다. 매년 그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사이트가 필요한 패션 저널리즘은 인사이트가 없다. 혈세타령과 주무관련 단체에 대한 뭉뚱그린 어리숙한 평론만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번 서울 컬렉션은 누구보다 기대를 갖고 임했다. 서울컬렉션과 대학패션위크의 블로섬 인 서울의 심사를 맡으면서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로 각 런웨이장을 돌아다녔다. 목요일/금요일 양일에 걸쳐 지방에 명사특강에 불려다녔지만 그 와중에 학생들과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에 조형물을 설치하며 함께 못질을 했다.
나는 요즘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지금 꾸려가는 회사는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태이건만, 블로거로서 열심히 현장에서 뛰다보니 사람들의 눈에 띄고 활동도 깊숙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어느 업종이건 구태스러움을 벗는 좋은 방법은 새로운 수혈을 하는 것이고 그를 통해 좋은 감각을 되살리고 복원하는 것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자원봉사하듯 다녔다. 나는 한국에서 패션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영역을 대중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끌어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행정의 문제에도 불려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패션위크 기간은 단순히 디자이너들의 최신 작품들만을 섭취하는 기간이 아니다. 패션계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오가고, 또 교제가 오간다. 이번 컨셉코리아와 서울패션위크를 동시에 준비한 디자이너 최복호 선생님과 위크 기간 중 청담동에서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항상 디자이너를 나눌 때, 세대별로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디자인의 감성이란게 나이가 든다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자칭 나이만 젊은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 나라만큼이나 나이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성의 위계를 나누는 나라에선 디자인도 숨을 쉬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최복호 선생님과는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참 많은 걸 나누게 된다. 지방에 근거를 둔 디자이너로 여지껏 1세대로서 자신의 역량은 유감없이 발휘해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디자이너 집단도 신구의 조화가 필요하고 이를 이뤄낼 때 더 좋은 결과값을 낼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신인과 기성의 무대가 확연하게 갈렸다. 서울컬렉션이 열린 전쟁기념관, 신인들의 무대가 된 자이 갤러리, 신세계 백화점 10층까지 세 곳으로 분화되어 원스탑 쇼핑하듯 옷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말이 많다. 왜 한곳에서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파리 컬렉션도 한 곳에 모여 하지 않는다고, 이게 컬렉션의 실제 운용 방식이라고 항변한다. 신인디자이너들의 무대는 런웨이 공간이 너무 좁아 불만도 튀어나왔다. 문제는 이 공간 실측을 디자이너 연합회든 신인 디자이너든 선뜻 허락했다는 점 이건 양쪽 모두 반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릇된 정보를 준 행사주체인 피플웤스도 마찬가지고.
SPA 브랜드 사업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려고 노력한 첫 세대로써 SPA가 패션비즈의 대세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또한 물결이고 다른 플랫폼이 생겨나며 이전 것을 대체한다. 상품에만 라이프사이클이 있는게 아니다. 업태도 산업 전반의 패자들 사이에도 인간의 삶과 같은 생사화복이 있다. 이는 패션 뿐만 아니라 전자, 항공, 사진, 유통, 헬스케어를 포함한 모든 산업에 그대로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보이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을 버리는것이다. 툭하면 동대문과 디자이너, 정부, 내셔널브랜드의 각 특성을 잘 모아서 라는 식의 뭉뚱그린 평론에는 각 개별 주체가 어떻게 자신의 특성을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다. 신인 디자이너들의 육성을 말하지만 인큐베이팅 기간이 끝나면 기성이 된다. 이 나라에선 2년 8개월의 시간의 인큐베이팅 이후의 삶을 견딜만한 자영업자 디자이너가 몇 사람이 될지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답 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맨날 매년 매 시즌, 작업하고 준비하기 바쁜 디자이너들을 향해 언론이 쏟아내는 업계지의 무사안일에 가까운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위안도 아닌 정책도 아닌 말을 읽는 느낌이 아주 좋지 않다. 진단이라도 제대로 하던가. 디테일한 것들을 하나하나 시간을 들여 잡아갈 생각은 없고 항상 뭉뚱그린 비평을 읽다보면 화가난다. 비판을 할 때는 기존의 모델이 가진 한계성과 역사 속에서 해왔던 지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대안을 말하는 버릇 부터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울컬렉션이 당장 위기에 봉착해있고, 이와 함께 진행해왔던 대학패션위크도 여전히 관객들의 눈을 끌기엔 힘이 든다. 그러나 분명 대학패션위크를 통해 발굴된 신인들이 해외의 문을 두드리고, 서울컬렉션에 참여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맨날 혈세를 운운하기 전에, 잘 시행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고 못한 것들은 감사를 청구하면 될 일이다.
패션계도 그 내부를 보면 이해득실에 따라 업태의 방식이 바뀌는 걸 박수치는 자가 있고, 싫어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컬렉션을 없애고 페어를 확대하자고 한다. 물론 찬성인데 여기에도 전제조건이 있다.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디자이너 시스템에 근거한 컬렉션을 축소/폐지하고 신인 디자이너 육성 운운하는 것도 아귀가 안맞고, 페어 중심으로 확대란 말도 결국 페어에 맞는 사업형태를 꾸려온 자들은 쌍수를 드는 반면, 여기에 저항감을 가진 집단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각자의 입장이 다를 뿐이지 어떤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SPA가 대세고 전부라고 말할 때 미래의 패션유통을 담을 수 있는 포맷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결국 비평과 저널리즘이 일부 담당해야 하는 몫이기도 하다. K 패션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오히려 지금이 시작이고, 이제부터가 진정한 케이패션의 테이크 오프다. 런웨이가 별 것이던가?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힘을 모아 달리는 길이 아니던가. 해외 유수 출판사와 한국현대패션에 관한 책을 영문으로 내기 위해 동문서주하고 있다. 좋은 결과를 받을 거 같다. 나는 내가 블로거로서 할 수 있는 몫을 다할 것이다. 지치지말자. 그리고 외부세력에 의해서 와해되지도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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