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주말은, 회사를 운영하는 평일보다 더 바쁜 듯 합니다.
일요일 오후, 제가 좋아하는 구두 디자이너 이겸비씨와 함께 도산공원에
있는 애술랭 매장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애술랭(Assouline)은 1994년 프랑스 파리
에서 창립된 디자인, 미술, 패션, 사진 전문 출판사입니다. 아주 럭셔리한 책들을 내는 곳이지요.
파리에서 뉴욕으로 출판사를 옮긴 후, 다양하게 관련 책들을 내고 문화를 팔고 있습니다.
남편 프로스퍼와 아내인 마르틴은 이 애술랭을 차릴 때, 하나의 철학을 갖고
시작을 했다고 하죠.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라고요.
저처럼 패션과 디자인, 미술책을 전문으로 사모으는 컬렉터에겐 이 에술랭은
아주 익숙한 이름입니다. 템즈 앤 허드슨이나, 머렐, 에이브러햄즈와 같은 출판사들도
같은 류들인데요. 무엇보다 여기서 나온 책들은 매우 고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도록이 29만원이었어요. 페이지 하나하나가 예술품에 가깝습니다.
에르메스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에술랭 서울 매장에서
그들의 만든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봅니다. MCM와 아모레 설화수가
브랜드북을 이곳에서 만들었는지 몰랐습니다. 하긴 세계시장을 향해 나가려면 한글보다
영어로 만들어진 브랜드 북이 있는게 낫죠. 저 또한 이 분야에 관심이 많고요.
최근 K-Fashion on the Runway 란 책을 영문으로 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더욱 강화해서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특집으로
다루는 2권짜리 책을 템즈 앤 허드슨에서 해보자고 외국의 편집자가 연락을 해왔거든요.
문광부에서 준 프로젝트로 시작한 영문판 책이지만, 저에게는 경제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될 거리가
없었습니다. 말도 안될 정도의 원고료를 받고 그럼에도 책을 진행한 것은, 해외의 인터넷 서점
을 볼때마다 한국의 현대패션을 영어로 소개해놓은 책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맨날 좁아터진 내수 시장용 책만 나오다보니, 해외판매 루트를 하는 출판사
대표도 아주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우리자신을 못 판거죠.
겸비씨랑 저녁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도 이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요.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영문으로 써서 소개하는 일
저는 항상 해보고 싶었고, 지금 어느 정도는 진척된 상태이기도 하죠. 템즈 앤 허드슨과의 관계를
넘어서, 저는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왕성하게 소개하고 싶은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시장을 읽고 연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지요. 책은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언어로, 포멧으로, 판형으로 써야지요.
샐러드도 시키고.......
달콤한 크림과 버섯, 쇠고기가 들어간 크레페 스타일의 요리도 먹었습니다.
커피에 초컬릿 케익까지, 아주 긴 시간을 열심히 수다를 떨었네요.
애술랭에 들른 기념으로 미국 상류계층의 역사를 다룬 High Society란 책도
구매를 했습니다. 98000원이니까, 사실 아마존에서 사는 것 보다는 상당히 비쌉니다.
그래도 책이란게 참 요물이어서 현장에서 보는 순간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손에 갖고 싶은게
책이기도 하죠. 적어도 저 같은 북 컬렉터들에게는요. 한국의 패션과 디자인을 해외로 알리는 일, 이는
비단 출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국적 컨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일이기도 하죠. 하나같이 공무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무지하고 그저 줄이나 탈려고 드는 행태도 많이 보이죠. 그만큼 우리는 맨날 말로는 한국을 알린다고
하면서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빼놓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정부는 입으로만 떠들다가
민간에서 외교를 잘하면 그때서야 나서는 척, 수저를 올려놓으려고만 하지요. 이따위 인간들과 상대하는
일이 저는 상당히 힘들고 짜증납니다. 내 회사나 잘 하면 되지, 왜 이런 것에 헌신하는가 하면서요.
잊어서는 안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한류는 그 나라의 미감을 파는
일임을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철학과 정신성, 그것이 녹아있는 오브제를 팔아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의 문화적 컨텐츠를 알리는 길이지요.
저는 그래도 도전할랍니다. 세상은 넓고 우리의 컨텐츠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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