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라이프스타일을 껴안은 서점 1984-출판시장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다

패션 큐레이터 2012. 10. 29. 15:58


가을햇살이 하오의 무료함을 깨우며 사선으로 쏟아지는 시간.

<디자이너의 패션북>이란 책에 작은 추천의 변을 써준 이후로 알게 된 

출판사 1984. 그리고 출판사가 세운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샵 1984에 들렀습니다. 

전용훈 대표와 이번에 디어매거진을 만들어준 남현지 에디터와 디자이너 보리님도 함께 

만났습니다. 1984 는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하고, 대표의 출생연도이기도 하죠. 물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뜻도 담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던

오웰의 메시지처럼, 패션을 비롯한 출판과 다종의 문화들이 전체주의 사회처럼

획일화 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매달 패션 관련 도록과 서적으로 빽빽하게 서가를 채웁니다.

한달에 들어가는 돈도 300만원 정도, 사실 이 정도면 책으로 부리는 럭셔리죠.

그렇다보니 패션관련 책들을 번역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올해도 3권을 마무리 하려고

하고 있는데요. 사정이 이렇지만, 실제 출판시장에서 패션책은 그리 좋은 호평을 받진 못합니다. 

패션 매거진 편집장들이 쓴 책은 하나 같이 스타일 중심, 코디네이트 중심의 글들이라 

독서층의 외연이 넓어지기도 어렵지요.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와중에 예술가의 집과 인테리어를 담은 <예술가의 집>과 

거리의 문화를 패션과 함께 녹여낸 <더 스트리트 북>

과 같은 독특한 책을 낸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를 기반으로 디자이너 공방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과 패션을 매장에 전개할 수 있다는 것도 사뭇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 확장 전략이지요. 그래서 눈에 더 띄었습니다. 런칭파티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가지 못했다가 매장구경도 하고, 대표도 만나 인터뷰하고

미래의 편집장으로 힘을 발휘할 학생들도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공방에 온 것처럼 아기자기한 소품류와 문방구도 눈에 띠죠.



로렌스 킹, 머렐, 에이브러햄즈, 템즈 앤 허드슨, 예일

제가 이름을 나열한 곳은 바로 세계적인 디자인, 미술, 패션 관련

서적들을 내는 출판사입니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는 곳이다보니 매출도 

크고 규모도 엄청나지요. 이런 미국의 출판사에서 조차도, 북 스토어에서 패션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샵을 냈다는 점을 독특하게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며

오히려 벤치마킹을 하려고 했다는 점 놀랍습니다. 원래 1984는 

세계 문학전집으로 유명한 혜원출판사가 그 모태입니다. 

전용훈 대표가 3대째 사업을 이어받는 것이죠.



핸드 메이드 제품들을 워낙 좋아하는 저로서는 한동안 전용훈 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각 브랜드와 라이프 스타일샵을 만들게 된 계기, 출판사의 역사 등

무엇보다 본인이 현재 CEO로 활동하고 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을 파서 다니는

멋스런 이유를 물어봤답니다. 1984에서는 한국의 힙합과 인디문화를 재조명하는 강좌도 열린답니다. 패션과 

결합된 그 무엇의 세계를 다루는 것도 매력이 있겠지요. 원래 이날 만남은 핏보우의 전경빈 디자이너

와의 만남을 위해서 준비된 자리였지만 오픈 구조로 만든 디자이너의 피티 방식도 마음에 들고

생각지 않은 디자이너의 가방과 소품이 눈에 들어서 인사와 더불어 명함 나누고 왔습니다.



로우 클래식 같은 브랜드도 눈에 보이고요. 문구류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우리 시대의 출판문화와 시장은 상당히 암담합니다. 종이책의 죽음을 목전에 둔 요즘

아이패드와 전자게임기, 이외에도 다양한 소비거리가 즐비한 시대에서 텍스트란 다소 무거운 

이름은 젊은 층들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볍기만 한 것이 다가 아니고, 이런 

일천한 문화의 가벼움도 비평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대중은 선뜻 진중한

문화로 자신을 가꾸거나 바라보는 노력을 하진 않죠. 그래서 어렵습니다. 



어차피 패션은 한 벌의 옷이 아닌, 시즌 별로 변화 무쌍하게 변화하는

피상성의 세계를 넘어 각 개인이 자신의 색깔에 맞춰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를 

열어가는 열쇠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패션이란 이름의 우산 아래 다종의 문화와 

삶의 스타일들이 방점처럼 찍혀 모이는 공간은 매력이 있습니다. 책이 독자의 취향을 드러내듯

그의 정치성과 미감과 삶의 태도를 드러내듯, 패션도 동일한 작용을 합니다. 둘 사이의

상승효과는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것을 패키지로 묶어내는 전략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일테지요. 젊은 대표의 말을 듣다보니 저도 반성합니다.



모든 건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사회라고 하지만 정작 학부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오라고 하면, 구글링의 기초도 모르는 아이들이 수태였습니다.

정보과잉 시대의 소통상의 찌꺼기들이 난무한 시대일수록, 에디터의 철학과 저자의 철학이

만나 만들어낸 오롯하게 구워낸 그릇같은 한 권의 책이 필요합니다. 그때그때, 트렌드를 만들고 하나같이

미투(Me Too) 제품만 만들어내는 출판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소비자들을 이야기 하지만 그들은

시장을 창조하기 보다는 따라가는 추종자 전략의 작은 업체들일 뿐입니다. 이땅의 군소규모

출판사들이 워낙 많다보니 모험을 하기 어렵고, 리스크 부담을 안기도 어려운거죠. 



전용훈 대표가 최근에 번역한 책이 있다면서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오늘은 그걸 검토하며 저녁시간을 보내야겠네요. 그의 젊은 감각이 마음에 들어

제가 좋아하는 구두 디자이너의 패션 북을 여기서 한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아주 독특한 

컨셉의 책을 구성해 보려고 하거든요. 어차피 미술과 디자인 관련 출판사들도 형질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전히 구닥다리 교과서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들 많거든요. 이런 힘겨움

속에서도 소신있게 50년 넘는 출판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준 1984 전용훈

대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저는 젊은 탤런트를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따듯하게 성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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