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대학패션위크 전시를 지원하며-서울의 자화상을 그리다

패션 큐레이터 2012. 10. 24. 15:40


어제 하루 종일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 가 있었습니다.

대학패션위크와 함께 열리는 소규모의 전시를 돕기 위해서였죠.

말이 전시지, 참여하는 학교도 라사라, 한세대, 폴리텍, 홍익대까지 4개 학교

이고 작품 수도 너무 적어서 공간이 많이 썰렁했습니다. 그래도 과제하며

만든 작품들 조금이라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며 찾아

갔지요. 아침 10시 부터 저녁 8시까지 준비를 마쳐야 했습니다.



옛 성곽길을 복원했다는 서울시의 이번 역사문화공원 사업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번 대학패션위크의 출품한 학교

에서 조형작품들을 받아다 전시를 한 것이죠. 전시 3일전이 되어서야 기획서를 받았고

작품들의 실물 측정도, 제대로 구경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자원봉사를 하러갔죠.



전임시장 오세훈씨가 그렇게도 떠들던 세계 디자인 수도 서울.

그러나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외벽 두께만 25미터가

넘는 거대한 조형물이죠. 실제 내부 공간은 한없이 좁고, 채광도 고려되지 않아서 실제로 뭔가

행사를 하려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건축가 분들의 실측결과 발표를 듣고 나서

였습니다. 요식행위를 좋아하는 공무원들이라지만, 항상 혈세가 이런 식으로 

사용된 부분이 오늘날의 서울재정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소였지요. 



대학패션위크 기간이 서울패션위크 기간과 겹치는데다, 이번 

서울 패션위크 조차 3곳에서 나뉘어서 열리다 보니 관람객들의 부담도 

부담이려니와 혼선이 오는 부분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 4년제 학교

의상관련 학과들은 참여도 안하고, 맨날 패션쇼에 참가하는 학교는 정해져있으니 솔직히

지겨워진 일면도 있고요. 동기부여나 효과 측면이 쉽게 행정적으로 처리되지 못한 점도 어쩔 수 없지요. 

신인디자이너들을 키우고 육성하자고 하지만, 지금 잘 나가는 편집샵 대표들이 학생들의 작품을 

찾아서 보기엔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현재 의상학 교육이 시행되는 대학의 

학생들의 탈랜트 발굴 및 관리문제에도 한몫을 차지합니다. 



항상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나라는 의상학과가 너무 많아요.

학생들의 작품을 세세하게 챙겨서, 디자인품평회를 하고 아카이브를

만들어 기업에 제공하기를 하나, 여전히 고쳐야 할 지점은 투성입니다. 연예인병 걸린

학생들 패션쇼 보는 것도 지겹고요. 어느 학교라고 지명은 안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도 

자칭 종합예술학교 운운하면서 온통 연예인들이나 교수랍시고 앉혀서 저네끼리 교수놀이하고 

하고 앉아있는 학교지요. 패션협회도 마냥 칭찬해줄 수 없는게, 맨날 예산타령만 하지

그 어느 때도 미리 기획을 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서울컬렉션을 여는 주체가 서울디자인 문화재단이라던데

여기도 별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요. 오랜동안 질렸습니다.



폴리텍 출신 학생이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세대나 라사라만 해도 팀들이 와서 작업을 한 탓에 덜 심심

하기도 했을 텐데, 혼자와서 꿋꿋하게 작업을 잘 했어요. 제가 초기에 

야단을 좀 쳤거든요. 석고붕대로 바디를 만들고 그 속으로 유기 LED로 빛이 

발광하게끔 했습니다. 그 위로 우리 나라 패션시장의 핵이 된 SPA 브랜드들의 로고를

옷처럼 하나씩 입혔더라구요. 의미를 알아차리기란 간단하고 쉽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만든 작품은

부족해도 그 나름대로의 열정이, 따스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 맛에 아이들의 작품을 보고

품평하고 그러는 거죠. 문제는 전시상황이 최악이었습니다. 전날 비가 많이 온 탓에 

매우 추웠고 바람은 거셌습니다. 그런 가운데 학생들이 설치에 애를 먹었죠.



더 화가 나는 건, 전시가 이뤄진 공간이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역사문화공원 성곽길이고, 그 아래 잔디밭이라 제약요소가 많았습니다.

옥외에서 전시를 하다보니 바람이 거세서, 지지대를 받치지 않으면 줄창 넘어가는데

못질도 안된다. 땅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면 안되고, 성벽에서 5미터 떨어져야 하고, 그나마 역사적

성곽은 뒤로 하고 일반 담도 시멘트가 물러서 갤러리에서 그림 걸기 위해 사용하는 줄을 

쓰려니 흔적이 남는다고 폼보드로 아래를 받쳐달라는 둥, 전기는 위험해서 사용

못하고, 별별 조항들을 들이대며 잔소리하는 디자인재단 분들 때문에

작품에 대해 무엇하나 제대로 설치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 테마가 <서울 NOW>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현재의 지점, 그 위에 놓여진 서울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묻고 인간적인 도시 

서울을 건축하자는 공무원들의 아이디어는 일견에 참 좋습니다. 적어도 언어적으로는요.

그래서인지 한세대 학생들이 제출한 업사이클링 테마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재활용이나 리사이클에 매여 있다가, 오히려 폐기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 점. 보기 좋았습니다. 버려진 고철들을 모아 소나무를 만들고 

소나무 침선을 붙여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폐기물들을 모아 세계 지도를 만들었던데요. 가로 6미터 작업이라

사실 작품수가 부족했지만 그래도 벽에 전개하면 멋질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벽에 붙이려고 하니 흔적이 남는다고, 게다가 작품을 지지할 어느

것도 인위적으로 가져와서 사용하면 안된다고 해서 결국은 바닥에 그냥 깔았습니다. 쉬운말로

팽겨쳤습니다. 그런 가운데에 작품 전시 규정을 별나게 나열해대는 디자인 재단 분이 계셨는데 제가 

이름이랑 알아왔습니다. 어차피 저야  자원봉사한 사람이고요.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어요. 이렇게 옥외전시 

특성도 모르고, 제약요소도 모른채 규정만 이야기 하지 말고, 애초부터 이런 부분이 있으니 이를 고려

작품을 선택해오라고만 했어도 힘들지 않겠어요. 다른 곳에서 옥외전시를 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서울 디자인 재단도 제가 보기엔 준 공무원들의 세계일뿐, 당신네들이 

얼마나 서울을 알찬 디자인의 도시로 만들지 사뭇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힘들 때마다 

민간의 창의력을 운운하며 그 사람의 이름만 빌려서 땜빵하려 하지 마세요.

잘되면 저네 공으로 돌리고, 욕먹으면 전문가한테 뒤집어씌우시잖아요.



패션협회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최소의 비용으로 전시를 하는 것이라 해도

예산 한푼 일절 없이 학생들의 손 노동 하나 만으로 작업 설치하고 그랬던 거잖아요.

툭하면 예산은 없고, 보여주기는 해야겠고, 행사의 아귀는 맞추어겠고요. 맨날 이러니 죽어나는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 도우러 온 민간의 전문가나 학생들일 뿐이죠. 깊이 반성하세요.



전임 오세훈 시장이 그리고 꿈꾸던 디자인 서울 정책은 혈세의 

낭비만 남긴채, 그 부산물로 떨어지는 상처는 민간에서 안게 될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들, 비전있어 보이려는 말들, 그 언설 사이에서 정작 디자인의 

본질은 사라지고, 채색만 잔뜩 해놓은 서울만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비난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문화공원이 만들어지고,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 일명 '괴물'일 지언정, 지어진 이상 어찌할

수도 없죠.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이야기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살다보면 실제 역사가 되고요.

그래서 뭐 하나 지을때, 혹은 건물을 헐 때도 그 속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는 

거죠. 개념을 갖는 다는 건 이런 것입니다. 하나의 의사결정이 쉬워보여도 허락

이란 단어 하나에,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이 함께 그려지는 것. 이걸 보여

줘야 제대로 된 행정이 아닐까요? 정신들 좀 차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