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패션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디자이너 이승희의 2012 F/W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7. 14. 10:42


최근 패션협회의 공청회에 다녀왔다. 서울패션위크와 함께

열리는 의상학 관련 대학생들의 축제, 대학패션위크의 운영자문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대학패션위크는 패션위크 

주간에 벌어지는 마치 더부살이 행사처럼, 그 존재감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 이런 상황들을

조금씩 일갈하고, 나은 방향성과 새로운 기획의도를 삽입하려는 모임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서울시의 공공재원을 바탕으로

하기에 운영의 효율과 사업의 미래지향성까지 함께 갖추어야 한다.

말 처럼 쉽지 않다는 점,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다. 



이번 운영자문위 첫번째 모임 때 만난 디자이너가 한명 있다.

이번 모임은 학계와 업계, 언론 각 부분에서 3명씩 위원들이 모였다. 

피플 오브 테이스트의 송미선 대표와 패션 큐레이터인 나, 그리고 르이란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표인 이승희씨가 있었다. 송미선 대표는 한국의 인디 디자이너

육성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탈리아의 현지 중소규모 브랜드를 소개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날 만난 르이의 대표 이승희씨는 패션위크 때 신인 디자이너 

테이크 오프에서 처음 봤다.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에서 여성복을 공부한 후

런던의 후세인 샬라얀 밑에서 잠시 인턴십을 했다. 이후 세인트마틴에서 여성복 석사를

마치고 제일모직 구호 컬렉션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구호'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건축미가 그녀의 

옷에서는 발견된다. 디자이너는 지금껏 그/그녀가 걸어온 시각적 흔적의 누적 위에서 자신만의 성을 쌓는 법.

국내에선 프로젝트 런웨이 1의 참가자로서, 서울시가 뽑은 10명의 우수디자이너에 2년 연속 뽑혔다. 

자유분방한 듯한 유기적 곡선과 옷의 물성을 살려낸 드레이핑은 그녀의 무기다. 이번 컬렉션

에서 그녀가 보여준 테마는 'Dark Beauty' 굳이 풀어내자면 고딕적 미에 대한 탐색이다.



작가는 영국의 바로크 시대 화가 반 다이크와 마티스 쉘러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디자이너의 영감을 역으로 추적해보자. 패션 디자인에 대한 비평은

영감의 궤적을 거슬러, 한 벌의 옷을 산출시킨 정신의 조건을 검증하고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컬렉션이 "18세기 귀족 스포츠로 출발한 펜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다. 펜싱은 철저하게 

바로크적 산물이다. 단순히 전장터의 싸움기술이 아닌 귀족들의 인문적 훈육의 방식으로 궁정에 소개되고 

발전했던 기술이기에 그렇다. 위대한 시대, 위대한 인간은 거대한 옷을 입는다는 멘탈리티를 추구

하던 이들이 아니던가. 벨기에 출신의 앤터니 반 다이크는 인간의 신체와 패션을 극도로 

아름답게 그려낸 궁정화가였다. 그의 그림 속엔 시대가 지녔던  이중성이 담겨있다.



앤터니 반 다이크 <루시 퍼시의 초상화> 163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사람들은 바로크 시대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저 탐미의 시대를 구성하던

시작점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큰 착각이다. 바로크 시대는 매우 이중적인 정신성을 가진 시대다

르네상스의 성숙을 꿈꾸는 청년의 시대였다면 바로크는 손에 쥐어준 가능성을 어떻게 쓸지몰라 다소 혼란

스러워하는 아이의 괴팍스러움, 그런 면모를 갖고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의 자궁을 뚫고 새로운 

미감이 탄생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말하는 다크 뷰티란 바로 이런 것이라 추정해본다.



디자이너 이승희의 작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고집스러움이다.

그녀 스스로 올 시즌 영감의 테마로 잡은 바로크적 양면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실체를 아는게 필요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을 향해 '차별화의 욕구'가

거세게 파도처럼 밀려왔던 시대다. 지금의 우리와 그리 다를바 없는 시대다. 피아식별의 기준이 미가 

될 때, 인간은 장식욕구와 거대화의 본능에 빠진다. 자신의 옷을 신체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입거나, 화려한 트리밍을 달아서 시각적 현란함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컬렉션에 나타난 펜싱복의 변주는 일견에는 이러한 논리와는 반대의 

노선을 달리는 것 처럼 보인다. 사실 펜싱복을 변주한 디자이너의 작업은 꽤 된다. 지난 

2011년 디자이너 앤 드뮐 미스터도 펜싱복의 형태와 실루엣을 빌려 런웨이에서 선보였다. 펜싱복은

그만큼 많은 디자이너들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주 차용하는 시각적 레퍼토리다. 중요한 건 

디자이너의 옷을 분석할 때, 디자이너가 툭 던진 한 마디의 영감에만 천착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디자인이란 

과정 자체가 주체인 디자이너 조차도 작업 과정에서 언어로 표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번 컬렉션을 둘러싼 관련 기사들과 블로거들의 글은 보도자료

를 베낀 탓인지 온통 펜싱 이야기와 진부한 '귀족' 이야기의 재탕에 머물러있다.



이승희의 작업의 핵심은 어찌보면 귀족들이 지위경쟁과 인정투쟁을 벌이던 궁정에서 

'진정한 차별화를 위한 복장의 코드'를 스스로 발견해가던 시대의 인간, 그들의 옷의 논리를 

빌려낸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조심스런 판단을 해본다. 결국 이런 복장의 방식은 트렌드를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고집스러움이 자연스레 발현되는데서 출발한다. 자연스러움은 고전적 의미의 

절제와 인위적 의복구성의 방식을 차단한 채, 오랜동안 기억될 수 있는 시각적 문법을 찾는 것으로 흘러 들어간다. 

디자이너의 철학과 맞 닿아있는 지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승희의 옷을 독해하는 렌즈를 만나게 된다.



고딕시대부터 인간의 패션에는 고급스런 소재가 하나 씩 등장한다.

르네상스에서 꽃을 피웠고 바로크로 오면 이런 경향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결국 옷 속의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건 소재의  힘이다. 귀족들이 고급스런 소재를 독점하기 

위해 벌여놓은 수많은 일화들을 풍속사에서 발견하는 건 쉽다. 이 논리는 지금도 마찬가지. 이승희의 

옷에서 절개나, 현란한 바느질, 옷감 덧대기와 같은 의복구성의 인위적 요소들이 차단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직물을 한 벌의 집을 짓듯 건축적 차원으로 환원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몸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디자이너. 이승희의 매력은 사실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