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로맨틱한 여인들의 정원-2012 F/W 손정완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4. 22. 13:03


패션 디자이너 손정완. 컨셉 코리아 대회를 중심으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지도 꽤 오래다. 디자이너로선 오랜 구력을

자랑하는 그녀이기에, 사실 신진 디자이너들과의 새로운 조우를 통해 보여주는

최근의 행보는 감추어졌던 손정완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예전 내가 알던 손정완

의 디자인과 최근 몇 년 사이에 보여주는 디자인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다. 우선 

초지일관 밀어부치는 로맨틱한 감성에는 별 다른 변화가 없지만, 감성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상당한 절제력과 실험성이 증가하는 양상이다.



예전에는 그냥 예쁜 옷들을 하는 디자이너인가보다.

프릴이랑 레이스도 많이 달고, 색감도 화려한 '젊은날의 추억'

에 빠진 아줌마들을 위한 옷이려니 했다. 하지만 2년전부터 지속된 컨셉

코리아에서 그녀가 보여준 변신은 상당했다. 예전과 달리 지적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풀어내는 실루엣과 색감, 이질적인 소재들을 결합하고 해체하는

손길엔, 오랜동안의 디자인 구력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마크 퀸 <겨울 정원> 2000년

미우치아 프라다를 위한 설치작업, 폰다치오네 프라다, 밀라노, 이탈리아


올 2012 F/W 컬렉션의 테마는 영국의 작가 마크 퀸의 

<겨울정원>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1991년 <자아 Self>

연작으로 영국 미술계를 강타했던 그는 자신의 혈액을 얼려서 두상을 만드는 

엽기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찰스 사치를 비롯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그룹에 늦게 

합류했던 그는 꽃을 소재로 한 드로잉과 설치미술, 조각을 선보여 플라워아티스트라고 불리운다. 

신체를 화두로 한 그의 조각은 항상 인간의 유한한 신체를 테마로 하여 자연과 문화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현대의 모더니티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왔다. 유전자 변형 작물 화훼 등 현재의 과학기술로 

변형시킨 자연에 대한 성찰들을 조각을 통해 담아냈다. 이번 손정완 컬렉션은 마크 퀸의

 화려한 색감으로 조율된 겨울 정원의 애잔함과 완성될 수 없는 로맨틱의 

정서를 그대로 이삭한다. 완성될 수 없는 것들을 위한 '바느질'이다.



시들지 않는 동결된 꽃들의 세계, 그 정서를 모티브로 

한국의 전통 자수와 프린트를 이용, 섬세한 여성미를 물씬 토해내는

여인들의 정원을 만들었다. 소재들을 이질적으로 배합해내는 기술이 더욱 돋보였다.

파이톤(비단뱀피)와 벨벳과 울 코팅, 무엇보다 토르소와 어깨 상단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모피 트리킹이 있어 따스하고 심미적이다. 로맨틱함도 살렸다.



한국적 자수 기술을 적용한 울 소재 스커트도 신선해 보인다.

청록의 무게가 육중하게 그레이 컬러와 브라운색감의 모피 트리밍과 맞물린다.



뱀 비늘이 그대로 살아있는 파이톤은 자체가 

발산하는 그러데이션 효과로 최근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소재다. 이 파이톤을 쉬폰과 결합시켜 이중배색으로 

표현한 점이 참신하다. 실크와 저지, 워싱 시폰과 같은 소프트함 소재와 면, 

데님, 가죽과 같은 단단한 느낌의 소재를 결합하는 일은 마냥 쉬운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로맨틱한 느낌에 빠질 수 있는 스타일에 균형감을 잡아주고, 이질적인 것들을 함껴 

껴안아 낼 수 있는 정신의 자세를  만든다는 점에서 소재와 소재의 결합은 

그 미적 가능성의 세계를 탐색하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옅은 세피아와 베이지가 결합된 상의의 매력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비비드 오렌지와 감색, 에메랄드 그린을 섞어 

겨울의 환 속에서 저물지 않는 겨울 정원의 꽃들을, 그 강인한 세계를 그린다. 



예쁜 옷들에 홀리는 날들은 마음도 한켠 가볍다.

지적 무장을 한 이들이, 한켠으론 자신의 비루한 외모를 감추려고 

갖은 짓들을 다하면서, 겉으로는 자신의 정체성과 도덕성을 지식으로 무장하는 

위선자들을 어디 한 두번 보았단 말인가. 지식이 허영이 되는 시대

오히려 외적 허영에 가난한 마음을 갖기를 바래본다. 

내가 손정완의 꽃에 끌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