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상에 홀리다
오랜만에 좋은 책이 나왔다. 이번 달에는 예일대 프레스에서 나온 패션 책 중 신규로 출간될 4권의 책과 기존의 아카이브에서 미처 사놓지 못한 5 권의 책을 모두 구매했다. 올 여름이 지나고 가을 쯤 선주문한 책을 하나씩 살펴 볼 마음에 기대가 부푼다. 한국에서 무대의상의 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번역된 적이 없다. 앞으로도 번역될 기회가 없지 싶고. 그만큼 수요가 적고, 실제로 학문적인 접근도 많지 않았다. 국내에서 복식관련 연구자들이 써 놓은 논문을 보면 하나같이 주요 단행본 한 두권에 기존의 국내 학자들의 논문들을 겹쳐 쓰면서 그저 이름 올려주기 정도 밖에 안되는 것들이 많다. 시간을 내어 논문을 찾아도 실제로 내가 얻게 되는 건 이런 식의 학문 공동체의 배임에 가까운 게으름이 만든 짜증이다. 무대의상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단순히 스타일의 변주나 당대 디자이너들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될 미셀 메이어의 책은 1880년에서 1920년대까지, 어찌보면 샤넬이 당대 최고의 천재들과 무대를 만들고 연극을 올리던 그 황금의 시대를 함께 다루기에 출간 소식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책이기도 했다. 당대를 사로잡은 배우 3명의 이야기, 그들이 어떻게 무대의 연기자를 넘어 상업화의 논리에 따라 셀러브리티로 변모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대중이 연희와 엔터테인먼트를 어떻게 소비하고, 이와 더불어 패션은 어떻게 그들과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코드가 된다
이번 패션 큐레이터 미셀 메이어가 저술한 Staging Fashion은 근대적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배우가 어떻게 대중의 우상으로 등장하는 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물론 실제 단행본이라기 보다는 올해 1월에 바드 센터에서 열린 Staging Fashion의 카탈로그다. 하지만 외국 전시의 카탈로그는 단행본 이상의 정보들과 정제된 인터뷰, 역사적 사료들을 담는다. 큐레이터 제도가 순수한 학예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부럽다. 이 전시는 당시 최고의 트로이카, 3명의 여배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제인 하딩과 릴리 하지, 빌리 버크란 여배우는 당시 연희예술이 상업적 흥행과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당대 최고의 셀러브리티다. 오늘날 20세기 여배우들의 원형을 만들어낸 이들이다. 제인 하딩은 1859년 11월에 마르세이유에서 출생한 프랑스의 여배우다. 그녀는 1941년 향년 81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가지 파리의 코메디 프랑세스가 가장 아끼는 배우였다. 교태스럽고 앙징맞은 역할을 잘했고, 이로 인해 많은 남성팬들을 거느렸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연기법은 프랑스를 넘어 당시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셀러브리티에 대한 열망이 참으로 강한 나라다. 한국은. 이는 서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포함한 북아메리카 지역의 강력한 멘탈리티로 자리를 잡는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그 원형이 될 사건들과 사례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같은 걸 그룹을 넘어 케이팝을 이끄는 팝스타들과 한류의 배후에 있는 배우들을 향한 컬트적 소비 또한 근대가 만들어낸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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