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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특강을 마치고-패션의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2. 6. 6. 00:13

 

 

오늘은 (주)디자인하우스의 직원들과 함께 특강을 진행했다. 직원들의 월례회의가 열리는 충무 아트홀로 향했다. 디자인 하우스는 월간 디자인을 비롯하여 <럭셔리><스타일H> <행복이 가득한집><마이웨딩>등 다양한 잡지와 단행본을 내는 국내의 컨텐츠 미디어 기업이다. 나 또한 월간 <디자인>은 매월호 내 서재에 꽂힌다. 이곳에 기고도 여러번 했고,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멋지게 소개해준 매체이기도 해서 나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깊다.

 

직원들을 상대로 패션의 역사를 강의하려니 부담도 되었지만, 기존의 PPT 형식을 다 깨고, 시대 별로 알짜배기만 넣어서 짧은 시간안에 즐겁게 복식사의 전반을 훓어볼 수 있도록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한 시대를 깊게 돋을새김해서 현미경으로 보듯 느리고 깊게 보는 것도 좋지만, 이는 패션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깊은 경우에나 가능하다. 디자인하우스는 패션 관련 매거진은 내지 않는다. 그래서 시대를 조망해서 강의함으로써, 패션 전반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싶었다. 한 사회가 패션에 관해 진득하고 깊이있는 담론을 양산하는 매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건 사실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패션을 상업문화의 일환으로, 대중적 소비의 측면에서만 접근하기에 그렇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실시간 패션 관련 글들은 하나같이 똑같다. 누구의 민낯이 어떻고, 연예인 누구의 옷차림이 어떻고, 툭하면 개인마다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TPO를 상정한 후, 어떤 식의 옷차림을 하라는 식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90년도 초반에 이미 외국에서 다 울궈먹었던 스트리트패션을 나열하며 이래저래 트랜드를 끼워맞춘다. 이런 수준낮은 담론들이 패션계 외부에서 만들어질수록 패션계의 내부는 더욱 긴장해야 하고, 본질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내가 공연 및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시작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출판기능까지 함께 포함시키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지금은 당장 비전이 보이지 않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더워도 누군가 숨겨져왔던 진실의 측면들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패션이 단순한 사물이 아닌, 사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패션 매거진들은 그런 점에서 각 개별 브랜드의 광고판일 뿐, 패션을 인문학적으로 깊이있게 다루는 잡지들이 없다. 기대조차 하기도 어렵다. 에디터들은 대기업 브랜드 영업하기 바쁘고, 광고에만 목을 다니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방향성에 대해 한번쯤은 반성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나왔으면 한다.

 

내가 패션의 인문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