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성균관대에 갔습니다. 서승희 의상학과 교수님의 부탁으로 패션 전시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다행히 들으시는 청강생들 중에 제가 제작한 연극 <서정가>를 보러와주신 분들이 많았고, 작품을 통해 공연과 전시를 통해 옷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다라는 일련의 토대를 갖고 시작 할 수 있어서 더욱 풍성한 강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패션을 전시하는 일이 최근 늘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님의 전시도 현재 열리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주 실망스런 전시였습니다. 기존의 큐레이터들의 한계겠지요. 꼭 그들과 일종의 정신적인 선을 긋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옷을 단순하게 오브제로, 전시공간에 나열하는 것이 패션 전시가 아님을 저는 오랜동안 강의와 실무를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열린 외국의 패션전시 사례들과 그 속성을 구성하는 담론들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전시에 접근하고, 우리의 것을 알릴 수 있을까 이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우리시대에 멋들어진 패션전시가 이뤄지려면 적어도 우리 디자이너들로만 구성하고 그들의 노력만으로도 서구의 유산을 전유하고 차용하면서도 우리의 언어를 부착시키는 일이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패션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패션을 푸는 일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작금의 인문학은 일종의 광풍처럼 솟아올랐다가 또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항상 이런 식의 징후들을 보여왔지요. 패션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근 제 연극을 보시고 패션과 결합된 공연형태, 혹은 퍼포먼스를 제작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 기관들이 늘었습니다. 문제는 항상 이런 식의 선도적인 관점들이 인기를 끌 경우, 너도 나도 엇비슷한 형태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실제 메시지를 혼탁하게 흐린다는게 문제입니다. 카피로 모자라 커피와 코피를 쏟아내는 이 땅에서, 툭하면 '당신의 아이디어를 참조했을 뿐'이라고 능구렁이 처럼 말하는 무책임한 전시기획자들이 있는 한 사실 창조적인 전시를 선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큐레이터학과와 미술학 석사를 마치면 그저 큐레이터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놓은 이 땅의 고답적인 아카데미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창의적 생산물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 누군가가 피땀흘려 만든 담론을 시각화하고, 이를 전시장에 고생해서 만들고, 이가 성공하면 바로 따라하는 이들, 그저 함께 했던 사람들 몇 사람 빼내서 바로 빼먹자고 드는 게 이 나라의 행태였으니 말이죠. 그래서 국가 기관이든 사설 기관이든 패션을 둘러싼 전시나 공연에 대해 의뢰를 받을 때마다, 망설이게 되고 화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도망갈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이 땅의 한복을 브랜딩화시켜서 한국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문화이자 힘으로 자리매김시켜야지요. 지치지 않고 도전할 것입니다. 패션 전시는 곧 한 벌의 옷을 미술관에 거는 일 이상의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 넓고 깊은 세계의 속살로 들어갈 것입니다. 옷을 텍스트로 삼아, 세상을 읽는 창과 거울로 삼아, 맥락의 배후에 흐르는 넓은 강을 유영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공연도 전시도 결국은 하나로 수렴되는 시점이 오겠죠.
의상과 미술을 전공한 분들, 혹은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공부한 분들이 패션 큐레이션이란 영역에 도전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을 위해 언제나 헌신적인 멘토활동도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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