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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한다는 것은-연극 <서정가>제작 후기

패션 큐레이터 2012. 5. 6. 23:50


연극 <서정가>를 무대에 올린지 이제 5일이 지났다.

일본의 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를 올리면서 많은 걸

배운다. 우선 미술/패션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오면서 예전에 공부했지만 

그저 공연 전문 기자로 글을 써오던 내겐, 선정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실전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과정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블로그를 쓴지도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폭발적인 조회수를 

자랑하진 않지만, 항상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일정의 원칙들을 지켜왔다.

제목장사를 하지 않는 것과, 글의 내용과 수준을 일정 해발의 높이위에서 유지하기

등등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자칭 파워 블로거란 

자들에겐 일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할 생각도 없었고. 

극은 내면의 메시지에 정녕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면 된다. 이것이 소통이다. 



연극 비평과 이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깊게

공부했었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솔직히

신문을 비롯한 다양한 리뷰와 평론을 쓸때 해당되는 문제다. 실제의 

공연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지향한다. 조명 디자인, 무대, 의상, 배우의 연기,

연출가의 작품 해석 및 형상화 능력, 아트디렉터는 극의 이해를 위해

관객과 극의 의미를 만나게 하고, 다른 관련 부분들을 조율한다.



이번 연극은 짧막한 강의가 곁들여진 공연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과 극의 내용에 등장하는 1930년대

에 대한 해석을 그림과 패션을 통해 소화해봤다. 극이 모노극인지라,

관객들에게도 극을 사전에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면, 모노극이 

가진 약간의 불친절함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대학시절 

한국 연극계는 꽤나 많은 모노드라마들이 판을 쳤다. 


모노드라마는 배우 일인이 이끌어가는 연극이다.

그만큼 1인칭의 목소리가 무대를 채우기에, 배우와의 정서적

거리가 가깝다. 한편으론 배우 한명이 모든 극 중의 목소리를 좌우하기에

일종의 독재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것이 모노 드라마의 단점이었다. 이 단점을

극복하고 관객들에게 가뜩이나 국내에 초연되는 야스나리의 단편을 좀더 

친절하게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극에 앞서 시대와 정서

패션을 묶어서 설명하는 강의를 15분간 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32년은 1차 세계 대전 직후이고

일본에선 전통과 현대가 서로 충돌하며 가치관의 충격을 흡수

하느라 일상 속 인간들의 삶들이 버겨웠던 다이쇼 시대다. 이 시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드러내는 여 주인공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시대의 패션을 

말하는 좋은 그림을 찾아 당대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설명했다. 



연극은 공동작업이다. 배우의 혼이 무대에서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그/녀를 돕는 스태프들의 마음도 

움직여야 한다. 공연 일정을 앞당기느라, 힘겨웠지만 배우가 잘 

따라와주었다. 아니 무대에 점차 친숙함을 느끼며,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

내고 있다. 야스나리의 탐미적인 문장을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배우의 목소리는 분명 1인 이건만, 그 속에 수명의 목소리

가 녹아난다. 힘겨운 역을 해준 배우에게 고맙다. 



조명을 맡아준 최명석 감독님, 기술감독을 맡아주신 신정식

감독님 그리고 오퍼를 맡아준 의식님. 모두 이 공연의 뒤에서 든든하게

극의 의미를 받쳐주는 우군들이다. 이 분들에게 무엇보다 감사한다. 혜화동 선돌극장. 

극단 <이야기>의 첫 공연이 올려지는 곳이다. 오프 대학로인 셈이지만, 이 무대

에서 공연을 만들고, 작은 반향들을 얻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