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행복합니다. 그나마 늦게까지 잘수 있고, 어제는 일찍 잠이들어 푹 잤습니다.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책이 번역되어 나옵니다. 물론 역자는 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의 해제와 감수를 맡았습니다. 패션계의 파워블로거인 크리스틴 녹스가 쓴 <(가제)세기의 천재, 알렉산더 맥퀸>이란 책입니다. 국내판으로 나올 경우 제목은 약간 변경될 수도 있겠네요. 이 책의 한계가 좀 있는데, 시즌별로 작품 설명만 해 놓다보니, 전체적으로 알렉산더 맥퀸이란, 시대의 천재 디자이너에 대해 관통할 수 있는 정리된 텍스트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해제란 형식을 빌어서 알렉산더 맥퀸에 대한... 깊이있는 소고를 하나 쓸려고 합니다. 맥퀸을 알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를 매일 갔고 수도 없이 꼼꼼하게(도둑적으로 완벽하신 가카의 미덕을 배우고 있는 중) 작품 하나하나를 읽었습니다.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5가지의 표제어를 추출하고 이를 미술작품과 연결지어서 풀어내려고 합니다. 툭하면 패션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은 많아도, 정작 디자이너들을 다양한 렌즈로 풀어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15페이지 조금 넘는 소고지만 예쁘게 해제를 하려 합니다. 특히 서양미술사의 전통과 결합해서, 풍성한 해석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크리스틴 녹스에게 허락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분 제가 한다니 좋아라 합니다. 더 멋진건 크리스틴 녹스가 옥스포드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패션블로거란 점이죠. 이런 블로거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잘 키운 파워블로거, 열 교수 안부럽다......라고 믿고 싶거든요. 블로그란 매체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이를 통해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들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지요. 물론 지금도 고집스레 그 방향을 변치않고 지키는 분도 많습니다만, 블로그란 것도 결국은 포털이란 기업의 서비스일뿐, 돈이 되지 않는 내용들을 메인에 올리기란 어려운 시대가 되어갑니다.
저는 번역이 지식의 민주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실제 텍스트로 읽게 된 것은 오랜 역사가 아닙니다. 모든 언어가 라틴어였을 때, 기득권 세력만 그 언어를 배워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종교경전이었다는 점이죠. 지식을 해제하고 번역해서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권력화해야 하는 이들에겐 '뼈' 아픈 일일 것입니다. 총론대신 각론을 다룬 책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정말 꼼꼼하게(역시 가카의 은총입니다, 단 꼼수는 디스) 토론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번역작업에 대해서 교수님들에게 점수를 많이 주자고 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닙니다. 다른 이들이 쓴 언어를 풀어쓰는 일, 내 나라의 환경과 정서에 맞춰 언어를 통어하는 것입니다. 만만치 않습니다.
패션번역은 특히나 어렵습니다. 명멸하는 속도가 빠른 산업의 산물을 다루는 일이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빨리 등장하고 퇴출당하는 곳입니다. 이번에도 구두 디자인과 패션 예측, 셀리브리티의 역사와 담론에 관한 책을 번역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권을 번역하면서 구두 공방에도 가야하고 공장에도 가보고, 현업 디자이너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번역 과정이 마치 학교에서 디자인학생들이 과정을 배우듯, 텍스트를 풀면서 하나하나 배워볼 요량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번역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뀔때마다 고전 번역이 바뀌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요. 새술을 새부대에 담아야 하니까요. 이에 반해 한국의 의상학 코너에 있는 책들 상당수가 예전에 출간된 것들이 많고, 그나마도 교수 자신들이 직접 번역을 했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문체의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고, 편집자와 번역자의 노고가 보이지 않는 책들이 많습니다. 좋은 책을 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보의 수준을 넘어, 자기가 하려는 분야에 대해 꿈을 갖게 하는 힘을 갖습니다. 우리에게 일천한 현실이지요.
최근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코드에 맞는 분들과 연계할 수 있고 생각의 타래를 나눌 수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트위터로 여러분과 만나고 있습니다. 업데이트 속도가 빠른데다, 실시간 반응을 즐길 수 있다보니 저도 요즘은 여기에서 더 많이 글을 쓰는 것 같네요. 자주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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