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독일패션, 현대의 쉬크를 창조하다-이 책을 먹어라

패션 큐레이터 2011. 12. 29. 03:48

 

 

독일 패션의 본질을 묻다

 

최근 들어 독일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자주 접한다. 한국에서 현재 열리고 있는 칼 라거펠트 전을 비롯하여 질 샌더, 휴고보스, 아이그너 같은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샤넬과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청춘의 시간에 버금가는 창의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187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도 패션산업은 독일의 가장 생산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었다. 그 이후에도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은 한번도 패션에 있어 후발주자가 아닌 나라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2차 세계대전을 이야기 하면 히틀러의 베를린을 떠올리지만 당시는 무성영화의 창궐기였고 근대적 여성들의 다양한 이미지와 정체성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독일의 패션산업은 국가 최대의 수출항목이었을 만큼, 당시 환율로 계산해보면 의복 매출이 600억원에 달한다. 패션을 연구하기 위해 항상 역사비평학과 문화이론과 미술사 등 다양한 접근법을 사용하는 나로서는, 이번에 발행된 독일패션 1946-2012는 곱씹어 볼 책이다. 물론 이미지 중심이고 서술은 부족하지만(그래서 번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독일이란 나라의 얼개를 패션을 통해 읽어보기엔 안성맞춤이다.

 

전후 독일의 패션을 다루었다는 점과 산업과 미술의 연계관계를 밝힌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 패션은 독일의 현대 패션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패션 페어를 중심으로 수많은 언론의 세례와 관심이 쏟아졌다. 물론 부침을 겪은 브랜드들도 많다. 예전 볼프강 요프는 지금 분더킨트(Wunderkind)로 예전 뮌헨을 중심으로 열렸던 패션 위크는 이제 베를린에서 런칭한 메르세데즈 벤즈 패션 위크로 바뀌었다. 오늘날 독일의 텍스타일과 패션 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은 2억 유로 쯤 된다. 이 기적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이 책은 이외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다양한 독일의 패션 브랜드와 그 배후의 문화적인 의미들, 산업의 역학들을 밝힌다. 울리 리히터나 다니엘 베흐톨프, 에스카다, 필마, 보크너, 카렌 플레거와 같은 디자이너들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읽는 것 만으로도 현대 독일 패션의 좌표를 읽어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책 외에도 이번 달 내 서재에 들어온 다른 두 권의 책이 있다. 바로 베를린을 중심으로 1922년에서 24년까지 발행되었던 패션 매거진 STYL 에 대한 연구서와 베를린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문화와 패션의 의미들을 묻는 베를리너 쉬크가 바로 그것이다. 1920년대는 서유럽 전체가 혼돈의 시기였다. 무성영화의 창궐과 더불어 '분노하는 20년대'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다. 문제는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은 영감을 끌어오는 시기가 바로 이 때라는 점일 거다.

 

이 당시의 사진집을 한때 열심히 읽으며 이미지 상으로 느껴지는 정조들을 열심히 글로 써본적이 있다.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과 사회적 변화, 스포츠의 인기, 건강에 대한 새로운 관심, 무엇보다 전문직 여성들의 탄생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역할과 그 이상이 새롭게 변화를 겪던 시대였다. 이 모든 것들을 다룬 잡지가 바로 이 STYL 이다. 영어로 스타일이다. 더 멋진 건 이 당시 패션 잡지들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의미의 전달을 위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애니 오퍼딩거, 리젤롯 프리들랜더, 루드비히 카이너등과 같은 절세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여성 이미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대의 섬세한 면모들을 한땀 한땀 그려냈다.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인 광고를 실었던 매체였던 슈틸은 럭셔리로 가득한 소비주의의 도시와 당시의 제품들을 하나하나 마치 고고학자의 고문서처럼 보여준다. 이와함께 베를리너 쉬크는 도시의 전형적인 매력을 역사를 통해 드러내는 책이다. 우리에겐 이런 책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유럽을 자주 다니지만, 사실 기본적인 역사책의 교조적인 내용들 만으로는 도시의 실루엣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 자신이 항상 풍속사와 더불어 인류학적인 현장연구, 미술사의 이미지를 함께 공부하는 이유다.  독일 패션사와 문화의 영향을 함께 오롯하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내년 독일과 런던, 이탈리아의 패션 도시들을 다시 페어참여차 방문할 생각이다. 그때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연구를 통해 얻은 렌즈를 통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