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당신의 신발을 디자인하라-번역서를 고르며

패션 큐레이터 2012. 2. 9. 14:07

 


작년 말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를 번역 출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석관련 서적의 번역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제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흔히 주얼리라고 하면 여기에 과연 사람과 관계를 맺는 보석의 문화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숙제를 풀어준 책이기도 합니다.

 

끝나자 마자 3권의 단행본을 출간해야 하는 저로서는 부담이 되지만 또 다른 번역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전문서적입니다. 아니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패션디자인 분야의 각론을 다룬 책이겠지요. 우선 케이트 스컬리가 쓴 <패션을 위한 색채 예측>입니다. 예측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직능입니다. 사실 수요예측과 관리가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이땅의 의상학 교육은 최근 디자인과 경영으로 트랙이 나뉜 후 많은 학생들이 패션 마케팅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만 참고할 텍스트가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경영학 교수인 마이클 솔로몬이 쓴 <패션과 소비자행동> 정도인데 이것도 딱딱한 교과서에 불과하죠. 패션의 예측은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입니다. 색채와 소재, 실루엣, 다른 문화적 요인들을 결합시키는 힘을 연구하는 것인데요. 이번엔 그 예측 시리즈의 첫번째를 내놓습니다. 향후 시리즈별로 다 제가 번역을 해서 올려놓겠습니다. 이미 계약은 다 마쳤습니다.

 

왠만하면 의상학 전공자들 혹은 학위과정에 있는 분들에게 번역이나 공역, 혹은 필자로서 기회를 드리고 싶었는데요. 이제 저는 그 마음을 접습니다. 학위를 하는 것이 교수에게 줄을 서는 것이고, 선대의 연구를 진척시켜 더 나은 책을 쓸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웃기지도 않는 의상학과 교육의 현실이라면 철저하게 이분들, 배제할 수 밖에요.


글을 쓰면서도 참 씁쓸합니다. 어찌된게 이 나라의 의상학 교육은 하나같이 각론들이 제대로 쓰여진 것이 없는지. 마케팅 분과를 하려면 무엇보다 소비자 행동과 사회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데요. 이 분과의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제대로 묶어낸 책이 없습니다. 설령 논문은 있다해도 통찰력없는 결과가 대부분이죠.

 

이런 글들이니 단행본으로 묶이기는 어렵겠지요. 두번째로 번역하는 책은 아키 쇼클라가 쓴 Footwear Design 입니다. 흔히 서점에서 패션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연예인 옷 따라잡기, 스타일링 책이 대부분이다 보니, 실제 디자이너들이 실무에서 참고할 책이 없습니다. 구두 디자인을 하고 싶어도 참고할 책이 없고, 성수동 현장에서 고생하며 하나씩 배워야 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배우는 것과 플러스, 이론들이 결합되어 연구방법이 몸에 벤다면 더 멋진 디자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번역이 중요합니다.

 

최근들어 구두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청년들이 늘었습니다. 성수동 장인들의 워크샵을 다니고, 구두를 만드는 법을 한땀한땀 배웁니다. 실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구두의 역사, 신발이란 패션의 소품을 함께해온 인간의 역사가 누적되며 만들어낸 우리들의 정신적 풍경입니다. 이런 부분도 빼놓지 않고 설명해놓은 책이라 마음에 듭니다.

 

패션에 대한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실제 번역은 전문번역가에게 맡기고 있죠. 학계에서 번역을 천시하고, 게을리 한 탓입니다. 하긴 덕지덕지 베껴낸 논문만 내도 고액의 연구비를 줄 수 있게끔 한 이땅의 웃기지도 않는 작태 때문이지만요. 열심히 하세요. 저는 이제 여러분에게 기대를 버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