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그리고 그 이후
이번 월간 <디자인> 11월호에 글을 썼다. 제목은 <패션은 우리의 얼굴이다>. 뉴욕출장을 앞두고 부산하던 10월의 중간, 인사동의 전시관을 돌아다니다 받게 된 편집장의 전화 한통으로 이 글은 시작되었다. 오피니언란을 장식하라 글이니, 무엇보다 정말 내뱉고 싶던 의견을 내 놓으면 될 일. 하지만 패션산업을 익혀갈수록 블로거로 시작해, 복식사와 현대문화, 미학을 연구하는 독립연구자로 활동하는 요즘, 이런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패션에 담긴 표정이란 결국 옷을 입는 우리들의 표정이며, 그 표정을 산출하는 사회의 표정이기도 했으니까. 우리들의 표정이 집단적인 성격을 띨때, 그것은 어찌보면 '민족성'이란 거창한 수사를 얻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북유럽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특강을 햇다. 두번에 걸쳐 이뤄진 세션 동안 북유럽 디자인의 에센스랄까, 유전자처럼 전승되는 특성이 뭘까 나름 생각해 볼 기회였다. 강의자는 누군가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리서치 내용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새롭게 배운다' 그래서 난 강의하는 걸 즐긴다. 11월호 <월간 미술>에서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전시리뷰를 올렸다. 디자이너의 숙명이 상업과 예술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산 위로 바위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임을 그의 작품을 통해 설명했다. 이번 월간 디자인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 이는 바로 디자이너들의 디렉터, 스티브 잡스다. 뉴욕 출장 중에 그의 죽음에 대해 들어야 했다. 누구보다 인문학과 디자인의 결합을 꿈꾸었던 이고, 나 또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디자이너들의 숙명은 장르에 상관없이 왜 이렇게 비슷한지.
이번 디자인 호에 쓴 글은 유독 애정이 간다. 지금껏 많은 매체에 글을 써왔지만, 써 놓고서 마음의 짐이 남는 글이기 때문이다. 한국패션의 표정, 그 표정의 실루엣을 그리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하고 있는 혹은 실험하고 있는 복식의 형식과 글, 철학들이 향후 작게나마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나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자답하며 쓴 글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말끝마다 '한국적'이란 수사를 붙이며 우리는 전통을 이용한 현대적 재현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표정이 응축된 진정한 한국적 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글을 써놓고도 한참을 가슴이 어리숭거림을 느껴야 했나보다. 글의 빚을 점점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도 한편 힘을 내본다. 복식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까 역사라는 장구한 흐름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세롭게 정립할 수 있는 자료와 렌즈를 갖게 될 때다. 글이 나를 끌어올려준 시간의 이면에는, 한 줄의 생각을 적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해야 하는 내 자신이 있다는 걸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 느낀다. 그래서 글이 좋은 것 같다. 고맙다. 한줄의 글들아.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57707&category=000000060003 (원문 링크 걸어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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