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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신우 인터뷰-행복한 날들의 기억

패션 큐레이터 2011. 10. 10. 21:46

 

 

너무 늦은 세상에, 이르게 온 디자이너, 이신우

 

패션 디자이너 박윤정 선생님의 메종에 다녀왔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작업하시는 이신우 선생님을 뵐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날이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신우 선생님의 작업을 오랜동안 존경해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 두 사람을 뽑으라면, 적어도 1세대에서 말이지요. 진태옥과 이신우, 이 두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사실상 한국의 현대패션사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분의 작업을 본 건 초등학생일 때입니다. 당시 월간 <멋>이란 잡지가 서점에 가면 걸려있었는데, 초등학생 눈에도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지요. 어찌보면 한국 최초의 패션매거진이었으니까요.

 

 

한국 디자이너 1세대로 불리는 이신우는 오리지날 리, 영우, 쏘씨에, 이신우 옴므 등의 히트 브랜드를 선보이고, 파리 컬렉션 등 해외 무대에도 최초로 진출, 국내 외에서 입지를 다졌지만, 1998년 외환위기의 폭격을 맞았습니다. 회사부도와 잇따른 출혈이 이어지며 1 세대 패션 디자이너 중, 가장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작업을 보이던 디자이너가 무너졌지요. 이신우의 따님인 박윤정 선생님의 디자인도 만만치 않지요. 박윤정 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주 우연하게 이뤄졌습니다. 예전 문광부에서 뉴욕패션위크 준비를 할 때 자문단 성격으로 불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뵈었지요.

 

물론 <피델리아>의 성공적인 런칭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홈쇼핑을 통해 피델리아 브랜드를 새롭게 장식했으니까요. 이후 코스튬 디자이너로 <단적비연수>와 <태왕사신기>의 의상을 맡았습니다. 최근엔 영화 <마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김혜자 선생님이 칸 영화제 시상식에 나갈 때 입었던 의상도 박윤정 디자이너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이번 책에 <패션과 영화>코너에 박윤정 디자이너의 작업을 넣고 싶어 허락도 구하고, 선생님도 한번 다시 뵙기 위해서였지요. 이신우 선생님과의 첫 대면은 의외로 영화관에서 였습니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영화 첫날,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신지혜 아나운서와 제가 시네토크를 진행하는 날이었는데 디자이너 두분과 함께 이 자리에 오셔서, 어찌나 기뻤는지요.

 

 

이신우 선생님의 작업을 소개할 이미지가 많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한창 활동하던 당시, 안 그라픽스에서 사진집이 나왔는데 제가 이 책이 없어서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이미지들을 부탁드리고 왔으니까요. 그만큼 이 땅에서 1 세대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단점이라면, 자신의 작업을 아카이브화 하는데 능하지 못했던 게 사실 입니다. 후배들이 이런 작업을 해줬어야 했는데, 우리시대가 그런 걸 못해낸 게 사실이지요.

 

딱 한마디로 이신우 선생님에 대해 논평하자면 '너무 늦은 세상에 일찍 온 천재' 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지금에서야 유행하는 코드와 디테일을 과감하게 선보이고 적용했을만큼, 서양화를 전공한 디자이너는 회화적인 상상력을 자신의 작업에 과감하게 적용을 했지요. 한때 MBC 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삼족오'란 고구려 벽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디자인들이 붐을 일으켰지요. 사실 90년대에 이미 한국 복식의 원형인 고구려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캐내어 상품화 했던 건 이신우 선생님이었습니다. '아 고구려'란 테마로 디자이너 진태옥 선생님과 함께 SFAA를 창립하고 파리 컬렉션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때였으니까요.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멋지십니다. 찾아 뵈었던 날도 의상 피팅 막 마치시고 어깨에 넣을 패드를 일일히 바느질 하고 계셨는데요. 내년이 되겠지요. 아시아 위크가 뉴욕에서 열릴 때, 제가 복식에 대한 특강을 하게 될 기회를 얻게 될 것 같아서 그때, 진태옥, 이신우, 이상봉, 이렇게 세 분의 서양복식의 한국화 작업을 영어로 강의 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자료도 얻을 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언제뵈어도 단아하세요. 친구를 보면 그의 삶이 보이듯,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이지 김혜자 선생님의 느낌하고도 굉장히 중첩이 되는 면이 있죠.

 

 

90년대를 통털어 한국 최고의 패션 브랜드였던 이신우,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또 묵묵히 작업에 들어갑니다. 2018년이 되면 50주년을 맞습니다. 저는 이신우 선생님의 50주년 기념 전시회를 꼭 한국에서 열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사회는 디자이너에 대한 재평가, 역사적 맥락에 따른 재해석이 없는 사회입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를 미술관에서 해석한다는 것은 지금껏 그/녀가 해왔던 작업들을 나열하고 헌사만을 바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박윤정 디자이너께서 '선생님(이신우)께서 유종의 미를 잘 거두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아름다운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예의 단아한 발걸음을 걷고 계신 디자이너의 뒷 모습은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시가 필요합니다.

 

전시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가, 당대를 어떻게 읽어갔는지 그 시선의 오롯함을 넘어, 그 속에 포함된 그의 생각의 무늬들을 읽어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인간을 고고학적으로 접근하고, 사회를 한 벌의 옷이란 렌즈를 통해 읽어보는 일은 시대를 새롭게 읽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 자신을 이전 세대가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놓았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임을 배워야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디자이너의 겸손이지요. 자칭 젊은 디자이너들 중에 '참신'이란 미명하에 착각에 빠진 이들을 꽤 봅니다. 역사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면, 이런 행동을 잘 하는 법입니다. 인생에서 먼저 길을 간 이의 발자욱을 보고 그 궤적을 따라 걸어가는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발걸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