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1920년대 패션의 절정을 맛보고 싶다면

패션 큐레이터 2011. 9. 19. 00:57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그 사랑의 행적을 쫒다

 

지난 8월 28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시네토크를 진행했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영화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맡았고, 나는 당시의 복식 스타일과 문화적인 요소들을 함께 곁들여 설명했다. 이번 글은 시네토크에서 마저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썼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복식의 렌즈로 어떻게 시대를 읽을 수 있는지도 설명해 볼까 한다. 아시아 경제지의 채정선 기자가 기사를 쓰면서 녹취한 내용을 신문에 실어주었다. 그 내용에 대한 좋은 보충이 되길 바라며.

 

영화의 시작은 보이카펠과의 사랑에 빠진 샤넬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번 째 연인이었던 보이카펠은 광산업으로 돈을 벌었고, 전쟁 시엔 프랑스 정부의 연락장교로 인정받으며 견고한 프랑스 상류귀족 사회로 편입된다. 출신이 미천했던 샤넬은 그런 카펠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샤넬 메종을 냈고, 성장했지만 결국 그의 사랑을 얻는데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가 사고로 죽은 이후, 연인을 잃고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진 샤넬의 모습을 그린다. 물론 허구다. 전기작가마다 이 당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각자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샤넬에 관해 나온 전기만 40여종이 넘는다. 그 중에서 내가 읽은 건 7 종류. 특히 음악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정리한 이들은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의 관계에 대해, 작곡가의 전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저 샤넬이 지어낸 착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샤넬 측도 마찬가지다.

 

 

근대 패션의 시작, 폴 푸아레를 찾아라

 

영화는 스트라빈스키와 러시아 발레륏스의 1913년 <봄의 제전>초연 장면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와 함께 극장에 들어가는 여자가 바로 영화 속에서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샤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미아 세르트란 폴란드 출생의 피아니스트다. 그녀는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로서, 후원자로서 인생 후반에는 샤넬과 경쟁하기도 했고 그녀를 흔히 하는 말로 씹고 다니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미아 서트. 그의 그림을 본 이들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그녀의 풍만하게 살집 잡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리라. 그녀의 도움으로 샤넬은 고급 상류층 사회에 편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 장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옷을 유심히 보면 머리에 터번과 같은 깃털이 달린 모자에 챙이 둘러진 가운을 입고 있다. 당시는 샤넬이 유명해지기 전, 당시 정상에 있던 디자이너는 '폴 푸아레(패션왕,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음)'다. 동방, 아라비안 풍, 그의 디자인은 예술과 패션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당대 프랑스를 사로잡았다.

 

봄의 제전은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보는 <봄의 제전>은 1913년 바슬라브 니진스키가 안무한 원본이 아니다. 니진스키는 이 작품의 실패로 큰 타격을 입었고, 그의 천재성은 '너무나 일찍 느린 세상에 와 버린 탓에' 묻혔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쓸쓸하게 노후을 보냈다.

 

 

샤넬은 대량생산된 패션의 어머니다.

 

이후 영화는 세계 제 1차 대전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다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 장면으로 치환된다. 그때 의상이 깃털 모자에서 검정색으로 변한다. 그때 포드 자동차가 등장한다. 복식사에서 유명한 샤넬의 '블랙드레스'가 등장하는 시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포드의 대량생산체계가 자리잡고, '검정색이면 뭐든 좋다'라는 그의 명제는 산업을 이끄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샤넬 또한 오트 쿠튀르로 시작을 했지만 이런 대량생산체계에 맞추어, 기성복 체계로 넘어가는 출발점에 선 시대다. 영화 속 샤넬이 타고 다니는 포드 형 T 1 자동차를 발견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샤넬은 이 기성복이 시작되는 시점에 두각을 보이던 디자이너다. 1920년대 의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마저 드는 아름다운 옷들은 스크린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샤넬 항수 ‘넘버 5’를 만들러 가던 장면에서 샤넬이 입고 있는 화이트 코트는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옷의 안감은 저지 소재다. 이것은 전쟁 중 남성복에 사용되던 것이었는데 전쟁 중에 샤넬이 많이 사두었다고 한다. 그것을 이용해 그녀는 편안하고 실험적인 옷을 만들었다. 그 저지 안감은 형형색색 삼각형 무늬가 패치워크로 연결이 되어 있다. 16세기에서 18세기, 거리에서 악사들이 연극과 무용을 공연하며 어릿광대를 등장시키곤 했는데. 그때 스트라빈스키는 <푸치넬라>라는 작품을 작곡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거기 그 발레극에 어릿광대들이 등장해 입고 있던 옷이 바로 그 삼각형 무늬와 같은 것들이다. 베니스의 카니발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왜 성공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감출까?

 

당시 발레 공연은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협업하는 형태였다. 오늘날 콜라보레이션의 시작이다. 장 콕토가 글을 쓰고 피카소가 무대를 만들던 때다. 그때 샤넬은 자신을 예술가라고도 디자이너라고도 말할 수가 없었다. 출신이 천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고아원에서 자란 과거가 있을 때,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들 콤플렉스로 작용했던 것. 이 출신을 감추면서 상류층으로 다가가는 것. 괜찮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만난다. 그와 그의 가족을 <벨 레스페로>로 불리던 파리 외곽의 멋진 자신의 별장에 초대, 그곳에 기거하도록 한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불같이 빠져들었던 그들의 사랑을 기록한다.

 

      

디아길레프의 발레단을 도와주면서 그 발레단을 돕던 러시아의 구 귀족들, 망명을 와서도 흥청망청 살고 있는 구 귀족들을 고객으로 끌어오고 싶었던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예술가들로부터 문화예술을 배우고 싶어 했던 것 또한 이유였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샤넬의 작업을 보면 다문화적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 그런 장치들이 있다.

 

패션, 역사와 에스닉을 해석하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그의 아내의 질시도 시작된다. 샤넬이 그녀의 방에 있는 옷장을 열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샤넬이 집어 들어 유심히 보는 옷이 ‘루바슈카’라는 옷이다. 이 옷은 러시아 농민들의 노동복이다. 끝단이 러시아의 전통 자수로 되어있다. 당시 랑방도 그랬고, 경쟁하던 디자이너들은 자수 작업을 한 옷들을 많이 내놓았었다. 샤넬 역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고민했었다. 이때 그녀는 루바슈카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소위 ‘에스닉’풍의 옷들을 디자인했다.  이후의 컬렉션에는 화려한 자수기술을 도입한 의상들을 선보인다. 샤넬을 둘러싼 역사와 패션을 역사를 알면, 영화의 하위 텍스트에 묻힌 이런 작은 장면들이 보인다.


 

 

이 영화는 허구다. 샤넬의 이미지를 연기한 안나 무글라리스는 중성적이면서도, 키는 훌쩍크고 너무나 말랐던 샤넬의 이미지를 잘 살려냈다. 물론 영화 속 칼 라거펠트가 일일이 손을 봤다는 의상들도 눈길을 끈다. 영화는 아무래도 스트라빈스키의 격정적인 음악들, 적어도 샤넬과 만났다가 헤어진 이후에 그가 산출한 음악의 성격들이 샤넬과의 깊은 연정에서 비롯된 것이란 가설을 내놓는다.

 

 

샤넬이 옷을 만드는 원칙과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작곡하는 원칙. 이 둘 사이에는 예술의 영역이 교류할 수 있는 궁극의 공통점이 있다. '느낌'이다. 그녀가 인공향수 샤넬5를 만들면서, 당시 귀족들이 사용하던 천연향 대신, 인간의 욕망이 들어간 인위적인 향을 만든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거다. 신지혜 아나운서가 영화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공감각'이란 표현을 썼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두개의 감각을 치환하거나 혹은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후각과 미각과 촉각과 시각과 청각,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시각적인 포화공격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속에서 다양한 감각을 뽑아내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일거다.

 

영화 속 음악도, 미장센에 따라 그 호흡을 따라가는데, 참 좋다. 마치 한 장의 피륙을 만치는 느낌이랄까. 벨벳에서 펠트로, 실크로, 혹은 거친 질감의 마를 느끼는 것처럼, 다양한 느낌의 음과 색, 직물의 상징성이 결합된다. 영화도 디자인도 이러한 공감각의 세계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 싶다. 지난 번, 코코 샤넬에 이어 이후의 삶을 보여준 영화 한 편이 나와 나로서는 흡족했다. 물론 영화 속 인물 간의 섬세한 교류나 갈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다소 미진한 점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절제된 느낌이 배어나와서 나로서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