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영화 상의원-아름다운 실패, 그러나 도전해야 할 영화

패션 큐레이터 2015. 3. 4. 20:56



영화 상의원을 보는 시선 


복식사를 가르치는 제겐, 패션을 영상화하는 작업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영화와 패션>이란 테마로 서양복식사 강의를 해온 터라 한국의 복식을 소재로 한 영화도 한번 보고 싶었죠. 2012년 SBS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에 출연하게 된 것도, 패션과 드라마라는 두 매체의 만남을 간절히 바랬던 제 자신의 작은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습니다. 영화 <상의원>은 제 두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이었죠. 몇몇 드라마의 의상 자문을 맡은 적은 있지만, 한국의 전통복식의 화려함과 그 속에 숨은 그 이중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내는 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죠. 



한 마디로 영상은 너무 아름다왔습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때 없었고요. 그러나 아쉽게 흥행은 실패했지요. 상의원이란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터였을겁니다. 패션의 역사를 강의하면서 제일 힘들었던게, 서양을 사례로 설명할 땐, 사람들이 열심히 들어요. 그런데 우리 한국, 혹은 동아시아 복식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지루해합니다. 우리 스스로 근대화과정 속에서 서구의 우월적 위치를 내면화한 까닭인지, 옷에 대해서는 동양과 서양이 거의 공진화를 하거나 동일한 발전상황을 맞이한 일이 많음에도 서양의 사례에만 너무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상의원이란게 조선시대의 궁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의복과 물품을 관리 제작하는 곳이었잖아요. 서양의 루이 14 이야기를 하면서 상의원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서구 장인들의 스튜디오와 그 작품들, 가령 의자나 타피스트리, 회화작품, 드레스에 대해 설명할 땐 귀를 쫑긋해도, 정작 우리의 제작소를 말하면 잘 들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참 지독한 이중의 잣대가 있더란거죠. 복식사를 가르치는 저로선 이게 참 힘듭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 상의원의 시나리오의 몰입도는 떨어진다고 보는 쪽입니다. 갈등관계가 어정쩡한 느낌이었죠. 영화 <아마데우스>처럼 모짜르트를 질시하는 살리에르의 감정묘사처럼, 두 사람의 갈등이 초반부터 점증되는 구조로 갔더라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요? 어침장이란 말 그대로 당대의 기준에서 최고의 의복제작기술과 관행을 터득한 사람일진데, 저자거리에서 기생들의 옷을 만들어주는 천재적인 인물이 나타나, 옷과 관련된 기존의 관념들, 좀처럼 내려놓으려 하지않는 관행들을 깨부수는 시도이니, 얼마나 욕을 먹을 일이고 위험한 것이었겠습니까? 옷이란 사물도, 결국 인간에게 입혀지기 위해서는 옷의 선과 색과 형이 인간의 감정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런 설득과정이 너무 코믹하게 전반부에 다뤄지고 한 벌의 옷이 디자이너의 손을 통해 어떻게 대중의 스타일링으로 자리잡는가에 대한 과정들이 빠져있어요. 이 부분도 사실은 지루하지 않게 풀어낼 요소가 있었을텐데 아쉽더군요. 



우리의 전통적 관점에서 옷이란 영화에서 보셨듯, 권력과 사회 내부의 위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기호입니다. 그러니 옷을 입는 실체의 삶과는 유리된 영혼의 그릇처럼아쉽게도 신체의 실체 형상과는 먼 거리에 있는 사물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어디 패션이란 것이 추상적인 가치만을 표현하는 것이던가요? 결국 입체형태의 인간의 몸에 입혀져서, 인간이 가진 내적 실체를 드러내는 도구, 매력을 발산하는 기제가 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잖아요. 



이 장면을 생각하면 참 좋았습니다. 나주에서 쪽염을 하고 저렇게 염색한 천을 햇살 좋고 바람 잘 드는 산마루에 함께 말려본 적이 있죠. 가장 전형적인 패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것도 조금더 새로운 각도의 접근법과 화면구성을 했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특히 형태를 파격적으로 디자인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공진도 결국 조돌석에게 와서 왕의 옷에 들어갈 자수작업을 부탁하잖아요. 극에서 자수를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굉장히 평면적인 느낌만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한땀한땀'이란 단어가 마치 조롱하는 듯한 표현으로 쓰일때도 많다는 걸 느끼고 있는데요. 



자수(Embroidery)란게 그저 장식만을 위한 소재가 아니거든요. 여기에도 이야기가 있는데, 문제는 한국복식사를 연구하고 고증하는 분들, 아마도 이 분들이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셨을텐데,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아요. 자신들에겐 굉장히 이야깃거리가 있는 재료인양 말은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 풀어낼 때, 촌스런 느낌을 많이 줍니다. 한국의 복식, 그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크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건 바로 그 구태의연한 풀이과정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이공진의 모습은,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서양에서 입체의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실제 바디를 나무로 만들어놓고 그 위에 천을 덧대어가며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머리 속에 구상한 다양한 디자인을 수묵으로 그린 일종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영화에선 보여주죠. 화나는 건, 이런 혁신적 작업이 실제로 조선시대에 있었고, 충분히 있음직한 개연성을 부여해줘야 하는데, 이걸 갈등의 마지막 장면에서나 겨우 보여줘서 아쉬웠어요. 패션의 다양한 메세지를 풀어내고 이를 화면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할 때, 초점과 집중도가 떨어지고, 하나만 밀도있게 몰아갈때는 과정상의 촘촘한 사건들이 배열되어야 하죠. 시나리오 작업이 쉽진 않았을텐데, 화려한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머문 것이 아쉽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눈으로 보는 화려함만이 다가 아님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증명하게 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 한국복식의 매력을 이야기와 결합하려는 그 시도가 저는 좋습니다. 사실 조선시대의 침선장은 오늘날의 패션 디자이너죠.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있었잖아요. 김태희씨가 나오서 말아먹고 말았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드라마를 비난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옷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구나라는 결론만 계속 내리게 되더라구요. 옷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결코 옷이 눈에 보이지 않고 옷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몰입되게 하는 일. 어렵지만 해보고 싶은 생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2의 상의원이 꼭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때는 정말 저도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