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패션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가?

패션 큐레이터 2011. 9. 17. 13:27

 

방송국에서 영화 속 패션이란 코너를 7회 동안 진행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여력이 미치지 못해 중도에 스스로 그만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OBS가 있는 부천까지는 상당한 거리여서 사실상 길에 뿌리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8월 중순부터는 한달에 강의가 10회상 늘어나서 시간을 맞춰 2회 분씩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 속 패션이란 코너를 통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와 패션의 상호관계에 있었다. 단순하게 역사의상을 고증해놓은 작품들을 주욱 나열해놓고, 이건 1920년대 패션입네, 이건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입네 떠들자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영화나 패션이나 모두 스토리를 필요로 하고, 그 이야기를 핍진하게(현실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한 다양한 소도구를 쓴다는 것이다.

 

패션쇼를 가본 이들은 알 것이다. 단순하게 일년에 두 번, 디자이너의 신작 의상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다. 런웨이에는 당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갈등,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타인에게 보이고자/보여지고자 하는 욕망이 개별 디자이너의 '해석'을 통해 등장한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드러내는 장치다. 물론 궁극의 바탕은 문학에 있다. 문학이나 영화나 패션이나 결국 공통분모를 갖는데,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영화 속에서 패션은 이야깃 거리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나는 바탕이 되기도 하며, 플롯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주요 장치가 되기도 한다.

 

9월 23일 한국패션협회에서 신인 디자이너들을 모아놓고 <패션과 스토리텔링>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고민된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자칭 <스토리텔링>이란 화두가 뜨고 있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이에 따른 다양한 강의도 들어봤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게 없었다.

 

한국사회는 이상하리 유행이란 단어에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편집증을 보이면서도, 정작 유행을 해석하고 다른 요소들과 연결시키는 작업에는 유독 손방이들이다. (손 때묻은 관록을 보여주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깊이없이 다이제스트판 책을 보고 고전을 다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서점에는 난무한다. 말로는 인문학을, 역사와 철학과 문학과 같은 문사철의 통찰력을 빌려오자 하면서도, 정작 고생스럽게 한 권의 텍스트를 읽어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데는 주저한다. 이번 달 뉴욕의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Fashion in Film 페스티벌이 열렸다. 쉘부르의 우산과 같은 고전작품에서,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Hearts and Crafts와 같은 패션 다큐멘터리도 선보였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의 장인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4 개 도시에 산재된 그들의 공방과 워크샵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스토리와 시각성을 가장 완벽하게 통합한 매체이기에, 영화를 통해 패션의 다양한 면모와 양상을 긴장감있게 풀어갈 수 있다. 이번 영화제에 등장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지 못해 아쉽다. 10월 말에 다시 뉴욕에 가면 관련 자료들을 사서 올 생각이다. 영화가 패션에 관해 할 수 있는 말들, 패션이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 그것을 찾아 가려는 우리들의 의지다. 스타일리스트가 무슨 패션 산업의 총아인양, 권력인양 패션 매거진에선 연일 떠들어댄다. 미안하게도 이런 경향은 곧 사그러들수 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이미 밑천이 드러난 이들. 그들과 공생하는 언론도 한계에 부딛치게 될 테니 말이다. 패션이 영화의 소재가 되고, 영화적 담론의 대상이 되기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다. 연예인 옷차림만이 패션인 줄 아는 사회에서 영화와 패션의 평행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한계고, 소득수준 3만불 이하에 있는 우리들의 바닥 정서다.

 

한국사회에도 멋진 한 편의 패션영화가 나오길 기대한다.......포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