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우사인 볼트, 에셔의 계단을 오르다

패션 큐레이터 2011. 9. 8. 13:23

 

 

스포츠웨어와 슈즈를 생산하는 푸마 브랜드의

대표 모델, 육상 단거리 세계 최고 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

이번 대구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200미터와 400미터 계주에서

금매달을 쥐며,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푸마는 볼트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

의 발을 지키며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더불어 스포츠웨어 시장의 세 강자로 군림한다.

 

 

1924년 아돌프/루돌프 대슬러 두 형제가 설립한 게브뤼더 슈파브릭사를

시작으로 이름을 날리던 브랜드는 1948년 두 형제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두 개의 실체로

나뉘게 된다. 오늘날의 아디다스와 푸마로 말이다. 펠레나 유제비오, 엔조 프란체스콜리, 디에고 마라도나

마테우스, 디디에 데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축구선수들을 스폰서 했다. 오늘날 푸마는 프랑스의 럭셔리 기업 지주회사인

Pinault-Printemps-Redoute의 자회사다. 푸마는 이후로도 그린피스나 공정무역 감시단체들을 통해 제 3세계의

 저임금, 양쯔강에 함부로 폐수를 버리는 등, 비윤리적인 사업 관행으로 많은 비판대에 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다.

 

 

스포츠웨어 회사답게 이번 푸마 브랜드는

일본 동경에 매장을 내면서 자신들만의 철학을 공고하게

세울 수 있는 매장 디스플레이를 선 보였다. 패션에 관한 글을 쓰면서

오랜동안 방치해 두었던 분야가 바로 비주얼 머천다이징과 디스플레이 분야가 아니었다

싶다. 패션산업의 내적인 논리들을 이야기 하고, 그 속살을 들여다 보기 위한

렌즈로 디스플레이란 부분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디스플레이도

결국은 거시적인 패션 브랜딩의 하위 요소다.

 

 

스포츠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승리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나가는 인간의 드라마를 기록한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동경에

새로 만든 푸마 매장의 인테리어는 온통 계단이란 테마를 선택해 꾸민 듯 보인다.

일본의 디자인 전문회사인 넨도사는 3500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매장에

이벤트 장소와 언론 프레스를 위한 공간,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형태의 매장을 도쿄의 아오야마에 만들었다.

 

 

M.C 에셔, <상대성에 대한 연구 Relativity> 1956년 리소그라피

 

이 계단들은 특히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장 내의 디스플레이 공간을 설치미술작품처럼 입체감을 주면서

동시에 스포츠 브랜드의 상품을 미술품처럼 큐레이션 해보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판화가인 M.C 에셔의 판화작품에서

볼 수 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의미지를 차용, 스포츠 경기의 시상식이 열리는

스테디움의 계단을 연상시키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마우리츠 코넬리우스 에셔는 자신의 작품 속에 항상 수학적인 논리로

구성된 모티브들을 선보였다. 영국의 수학자였던 로저 펜로즈의 영향으로 위상수학에

눈을 떴던 화가는 물질적·추상적인 요소들의 집합에 대한 선택된 성질들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인

위상수학의 개념적인 논리들을 익히며, 패턴과 공간의 환영을 반복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세밀하고 정교한 선들로 구성된 그의 건축적인 작품들은 무려 448개라는

엄청난 수의 판화작품과 2000개가 넘는 스케치로 남아있다.

 

 

그는 지금껏 서양미술의 화가들이 보여준 태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방식을 미술에 도입한 것이다. 인상주의로 부터 시작되는 풍경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의 투사나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보편적인 시각의

구조를 화면 속에서 어떻게 찾아내는 가에 주목했다. 반복과 순환, 변형, 무한한 공간, 3차원 공간이

잉태하는 환영(illusion)을 파괴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드러낸다. 그는 인간이 가야할 길, 끊임없는 상승의 욕구를 대표하는 계단을

자신의 작품 속에 모티브로 자주 등장시켰다. 계단은 권력과 승리

무엇보다도 미화된 인간의 정복욕을 드러내는 기호다.

 

 

높이가 다른 두 곳을 이어주는 발걸음의 수직이동 수단’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축물(계단)에는 인간의 종교적, 정신적, 기능적 활동의 결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축사가 임석재의 <계단, 문명을 오르다>를 읽고 있다. 계단이란 건축적

요소에 담긴 문화사적인 의미들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하늘로 이르는 길, 수직에 대한 욕망, 야곱의 사

다리에서 보여준 믿음의 표상으로서의 계단, 이번 푸마의 아오야마 매장의 디스플레이는

상승의 욕구를 가진 인간의 본원적인 사고를 건드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단거리 주자들의 미세한 시간의 격차를 향한 싸움은 매장 속에서

그대로 발원한다. 우사인 볼트를 떠올리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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