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베컴이 디자인한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살펴보는 시간, 깔끔하게 마장된
그녀의 실루엣들이 좋다. 예전 인기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에서
배우로, 싱어송 라이터로, 이제는 패션까지 무궁무진하게 영역을 넓혀온
빅토리아 베컴이다. 남편이 유명한 축구황제지만 그녀 자체만으로도 셀러브리티가
된 지 오래다. 2001년 마리아 그라치보겔의 캣워크 무대에 게스트로 나온 이후로, 런던 패션 위크에선
정식 모델로 섰고, 돌체 앤 가바나의 영국 홍보대사를 맡았다. 베컴의 디자인 이력은 2004년
락 앤 퍼블릭의 패션 라인을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주로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한
최상급 진을 내 놓았다.가격대도 보통 300달러 이상이었으나 판매는
급속하게 이뤄졌다. 패션계에 나타난 새로운 스타였다.
그녀가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셀러브리티의 패션은 시대의 패션을 읽어가는
기호학적 의미까지 띠게 되었다. 우리가 징글징글하게 공항패션을 들먹이고,
유명인사들의 옷차림을 특필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셀러브리티가
기존의 패션계에서 매체의 힘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항상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스파이스 걸스 이후로
내겐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솔직히 가수로서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지만, 좋은 디자이너로서 기억될 자신이 있다"
빅토리아 베컴
빅토리아 베컴은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한 이후로 2011년 현재,
가장 성공적인 여성복 컬렉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옷을 입는
명사들도 하나씩 늘어나, 카메런 디아즈는 오스카에서, 대니 미노그는 엑스 펙터에서,
레이튼 미스터는 미드 '가십걸'에서 그녀의 옷을 입었다. 이외에도 데님과 선글래스, 핸드백까지
다양한 패션의 아이템을 소화하면서 하나씩 자신의 라인을 성장시키고 있다. 빅토리아
베컴은 이미 캐나다와 미국,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일본, 러시아, 레바논, 한국과 두바이까지 시장을 확장했다.
빅토리아 베컴의 옷에는 자칭 청담동 상류층 여성들과
부유층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측면들이 녹아있다. 무릅까지 오는 깔끔하게
절제된 라인의 코트와 크리스천 루부탱과의 협업을 통해 만든
부츠와 구두를 신은 모습이 '균형잡힌 당당함'을 토한다.
절대로 튀지 않는다.
지나치게 실험적인 의상은 피한다.
획기적인 트랜드를 추종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우아함을 우선으로 하고 여기에 약간의 파격을 보여줄 수
있는 액세서리를 덧붙인다. 무엇보다 뛰어난 질감의 소재와 커팅을
중심으로 자신의 옷장을 구성하는 것. 그것이다. 무엇보다 옷을 하나의 건축에
생각하는 사고 그래서인지 옷 한벌에 주어진 드레이프나, 디테일, 옷의
구성방식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것이 상류층 패션의 특징이다.
한때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 불리던
샤넬의 트위드 정장 자켓이나 금속 체인이 달린
퀼팅 백(샤넬의 2.55 핸드백), 진주 액세서리, 투피스 정장
플랫슈즈와 플라워 코사주 등이 청담동을 위시로 한 상류층 패션의
일종의 코드를 이루었다면, 지금 청담동은 약간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는 듯 하다. 바로 '개인'의 재발견
이라는 과제를 풀어줄 브랜드를 찾는다.
이번 빅토리아 베컴의 디자인은 바로 상류층 여성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의 코드를 모두 다 섞었다. 커팅과 실루엣을 여유있게
풀었고, 장단지까지 오는 긴 헴라인에, 대담한 색상의 조합, 여기에 드라마틱한 폰초와
거의 바닥을 끌 정도의 망토, 짙은 모피로 트리밍을 한 눈에 띄는 패턴까지. 이런 2011년 F/W 의
대체적인 유행코드를 균형감있게 잉태시킨 29벌의 의상은 눈이 시원할 정도다.
부드럽되, 직선의 도도함을 잊지 않는
구조적인 실루엣은 여인의 몸을 살포시 껴안고 돈다.
화려한 삶의 현실 속에서, 주어진 도전의식을 피하기 보다 맞서는
여인의 이미지는 간결하고 엄정한 느낌의 옷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드러난다.
베컴의 옷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부드러운 간접화법의 양식을
차용한다. 화법 속에 내밀히 숨어있는 성공에 대한
암시, 뜨거움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원색을 쓰되, 차가운 계절을 껴안는 색상의 팔레트를
써서 자신을 표현했는가 하면 새프런(강한 황색) 이중 칼라처리,
허리를 꼭 감싸는 옷의 맞춤새는 그녀가 100번째 의상을 디자인 할 때까지
줄곧 사용해 왔던 지퍼로 척추아래 선까지 곧추 내려간다.
가진 자들은, 아니 고도로 자본을 축적한 자들일수록
결코 현시적으로 드러나는 옷을 사랑하지 않는다. 따라가되 조금씩
자신의 Individuality, 개성이란 표현과는 다른 나 자신의 됨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기.
빅토리아 베컴의 옷에는 이런 정서가 확연하게 묻어난다. 그녀의 옷을 보는
시간이 적어도 계급/사회적 관점에선 불편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조차 자본을 축적한 자들이 티내지 않고 우아하게
자신의 삶을 공고하게 지키는 방식이리라.
옷은 그래서 이데올로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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