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뉴욕에는 패션 전문 박물관이 있다-F.I.T 패션 뮤지엄에 다녀와서

패션 큐레이터 2011. 8. 27. 17:54

 

  

뉴욕 여행을 다녀온지도 이제 수 주가 지나갑니다.

물론 이번 초 겨울에 다시 한번 들러야 하지만, 여행은 유독 중독성이

강해서인지 뉴욕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네요. 안타까운건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이번

맨해튼에 아이린이란 불리는 허리케인이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어 25만명에 달하는 맨해튼 사람들을

신속히 피신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메트로-노스 쪽이니 북부지역 분들에게도

영향이 클 것이라는 소식이라, 지인의 안부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패션의 거리 7번가를 걸었습니다. 뉴욕은 사실 근사한 풍경을 가진 도시는

아닙니다. 그러나 경쟁적인 삶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함인지

볼 거리와 공연, 패션과 먹거리 등 (이런 점에서는 서울도 만만치 않게 변화하고 있긴 하죠)

하지만 뉴욕을 카피해본들, 오랜 세월을 걸쳐 진화해온 도시들의 궤적을 그대로, 그 문화적 유전자를

우리 서울에 각인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디자인 오라 불리던 오세훈 시장의 자칭 한강

르네상스는 빚네상스로 전락한지 오래이고, 그로 인한 서울시의 부채는 눈송이 처럼

불어서 이제 25조라는 엄청난 부채만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을 뿐이지요.

솔직히 이번 오시장의 퇴임으로 저는 걱정되는 것이 이후의

누가 되든, 그 거대한 잘나빠진 디자인 때문에 생긴

부채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됩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외국순방만 다녀왔다 하면 서울을 아시아의 '어디로'란 식의

수사를 남발하고 다녔던 정치인이었습니다. 입으로는 국가 브랜딩의 일환으로 서울을

발전시킨다고 했지만, 이 모든 기획안의 근간이 되어야 할 디자인 정책 어디에도 핵심 유전자가

되어야 할 '서울의 삶과 방식, 모던과 고색창연함의 만남'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디자인 정책을 계승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도시의 실루엣이니 더욱 그렇지요. 한국처럼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임기동안, 보여주기식 행정만을 일삼아 온 나라에선(이 점에서 여야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합니다)

디자인 정책의 계승과 국민적 공감대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이 되어버렸고,

재개발과 토지를 둘러싼 투기세력들에 의한 인위적 개발의 점증만이 있었습니다.

 

 

오세훈 전 시장의 동대문 패션 특구도 그런 차원 중의 하나였습니다.

패션의 거리를 규정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나라만의 쉬크한 매력

Chic함에 관한 우리만의 개념 규정이 있어야 합니다. 멋진 건물을 돈을 발라서 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거죠. 이런짓은 해봐야 부동산 투기꾼들에게나 좋지. 정작 문화를 국부로

만들고, 이를 브랜딩 자산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패션 도서관을 짓겠다

는 말도 돌았지만 하나같이 퇴임후에 어설픈 관장 자리나 하나 차지해볼 요량으로 눈이 먼 교수집단

들에게 떡밥이나 된지 오래이고(그렇다 보니 저는 제 사비를 털어 도서관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에는 온통 이런 욕망만을 가진 계층과 인간들만이 득시글한것일까요?

 

 

이런 답답한 마음을 안고 뉴욕의 패션 거리를 걷습니다.

패션도서관을 비롯, 디자인을 전담하는 미술관도 전무한 셈이죠.

한가람에 디자인 미술관이 있다고 해도, 전시되는 내용들은 실제 디자인의

다양한 영역들을 포섭해 전시하기란 어렵습니다. 이번 뉴욕 기행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알렉산더 맥퀸> 회고전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지만, 이 보다도 꼭 보고 싶었던 전시가

 오늘 소개할 F.I.T 패션 뮤지엄에서 하는 SPORTING LIFE였습니다. 스포츠, 패션을 만나다

정도의 부제가 되겠군요. 패션의 역사에서 스포츠가 기성패션에

미친 영향들을 짚어내는 전시였습니다.

 

 

이곳은 대학부설 박물관입니다. 그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고 작지만, 이런 전시들을

쉬지 않고 해내고 있죠. 한국의 대학들에도 박물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내 박물관은 유독

구색맞추기 정도로 끝나는 정도가 너무 많죠. 물론 제대로 역할을 하는 곳도 몇 군데 있습니다. 굳이 들라면요.

각 대학마다 특화된 박물관을 만들고, 이로 인해 학교의 브랜딩에도 도움이 되고 위상이 올라가면 좋을 텐데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컬렉터들에게 유물을 받아내는 데는 혈안이 되어 있어도, 정작 유물을 받고 대학재산으로 귀속시키는 순간

 '쌩을 까는' 못된 박물관들도 있고요. 저를 포함한 컬렉터들이 왜 자칭 국공립, 대학 박물관에 기증을 안하느냐면

바로 이런 짓을 대학 스스로가 하면서 컬렉터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여기에 반해 외국의 박물관들은 하나같이 선한 의도를 가진 컬렉터들의

기증을 통해 자신의 컬렉션을 늘여갑니다. 결국 박물관의 컬렉션은 다시 대중에게

선보이고 교육적 측면의 부족분을 채우지요. 그게 박물관이 영속적으로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번 SPORTING LIFE 전에 나온 작품들도 대부분 개인과 기억이 기증한 물품들입니다.

 

근대 스포츠 패션의 탄생은 무엇보다 운동이란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고 기능성이란 주제를 옷에 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죠. 역으로 패션은 기존의

미적 감성을 누그러뜨리고 기능성을 일상에 포섭하기 위해 이 스포츠패션을 서로가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19세기 중반 여성들에게 사이클링이 유행하면서 등장한 패션웨어가

현재까지 어떤 진화과정을 겪어왔는지 살펴보는 전시는 꽤 매력이 있습니다.

 

아래 보시는 의상이 1896년 청색의 면 트윌 소재로 만든 체육복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수도 있지만, 이 당시 이런 의상들이 얼마나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관련 자료들을 보면 놀랄 정도지요. 당시 스포츠 웨어는 두꺼운

울 소재로 만든게 많았습니다. 심지어 수영복도 이 소재를 자주 썼는데요. 소재가

가진 친수성(Hydrophilic property) 때문에 습기처리에는 좋았습니다. 요즘

테크노 텍스타일들은 이 방식을 따라하고 있지요.

 

 

이외에도 신축성 소재의 개발도 패션 웨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0년대 라텍스가 개발되었고, 1950년대 말에 가면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 공용명사처럼 되어버린 스판덱스가 나오게 되죠. 이 스판덱스가 만들어지면서

오늘날 수영복을 비롯한 스포츠웨어에는 가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찌

톰 포드 디자인

스키 재킷, 핑크 폴리에스터, 나일론, 스판덱스

1995년, 이탈리아에서 제작, 도로시 쉐레 기증

 

톰 포드가 디자인한 구찌사의 스키 웨어를 한번 볼까요? 기능성과 심미적인 특성을 동시에 갖춘 스포츠웨어의 탄생에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결합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짠 하고 그저 나타나는게 없다는 거죠.

 

사실상(모 정당 대표가 이 표현을 쓴 이후로는 글을 쓸때마다 조금씩 주저하게 되요) 스니커즈나 우리가 땀복이라 부르는 스웨트팬츠, 레깅스나 탱크탑과 같은 의상들은 실제로는 스포츠웨어에서 시작하여 일반 패션으로 번져간 사례입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1990년대 마놀로 블라닉 사에서 유행시킨 고가의 하이힐도 실제로는 기능성에 기반한 과거의 오리사냥용 부츠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최근들어 패션 디자이너들과 스포츠 브랜드 간의 협업작업이 눈에 띄는 것도 지금껏 패션과 스포츠의 결합양상의 한 방식일 뿐입니다. 위에 보시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가 아디다스와 함께 컬레보레이션한 Y-3 라인의 제품들을 보세요. 요지 야마모토 특유의 일본적 선의 느낌에 스포츠의 기능성을 결합한 디자인입니다.

 

작지만 끊임없이 패션 전시를 해내는 역량이 부럽습니다. 우리에게 자산이 없어서 못하는게 아닙니다. 대학 박물관이 실력이 없어서 혹은, 예산이 없어서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만큼 대학 박물관과 같은 기관들을 대학부설기관 정도로 생각해온 이 땅의 관료들과 대학 담당자들이 문제인거죠. 누가 만들면 따라 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 하버드 대학교의 포그 미술관이나 이런 곳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서양의 근사한 미술작품들 컬렉팅할 예산이 없는 것도 압니다. 그렇다고 전시를 못합니까? 아니지요.

 

그건 대학박물관에서 일하는 자들이 큐레이터란 생각을 안하고 스스로 대학에서 일하는 준공무원이라 생각하니 그런겁니다. 절박함이 없는 자들. 이따위 썩은 정신으로 일을 하면서 컬렉터들에게 소유품을 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맨말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누구는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서 미친듯 패션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책을 사고, 읽고 강의나가고 회사 운영하고 그러고 살까요? 대학이란 기관들이 공공의 목적을 못하고, 산하 대학출판사들도 하나같이 제대로 된 출판 저술작업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등록금은 폭등하지만 아이들에겐 부가가치를 창출해 손에 얹어주지 못하는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글 쓰다 보니 마음만 아파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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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ourtesy By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