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커셋 <아이를 씻기는 시간> 캔버스에 유채
1893년,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우리 아이를 씻기는 시간
영화 <도가니>가 한국사회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영화에 올올히 담긴 진정성 때문입니다. 힘없는 자들의 절규는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정의실종사회'에 대한 집단적 분노입니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낮은 나라에서, 주변부에 머문 장애인들의 짓밟힌 인권 앞에서 공분합니다. 정치권은 여론을 의식해 일명 '도가니법'을 만든다며 헛헛한 시늉만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27일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 아동을 씻겼습니다.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했습니다. 아동학대 및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연일 각 언론사들은 이 사안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에게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미국 인상주의 화가 메리 스티븐슨 커셋이 그린 <아이를 씻기는 시간>입니다. 저는 그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삶을 파리에서 보내며 당시 인상주의 화가였던 에드가 드가와 친구가 되었고 그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지요. 아이와 엄마 사이에 벌어지는 마술같은 감정의 연금술, 모성이 보여주는 친밀의 순간을 그녀보다 잘 표현한 화가가 없습니다.
자료화면: 오마이티비 화면 갈무리 나는 엄마다......
저는 커셋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를 껴안고 앙징맞은 발을 따스한 물에 씻기는 엄마의 모습에서, 유년시절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겨울이면 부엌 아궁이에 물을 한소끔 끓여다 식혀 발이며 얼굴이며 오목오목 씻겨주시던, 정작 본인의 손은 부르터서 콜드크림 구석구석 바르는 것으로 끝내던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배냇과 배외,그 어디에서도 엄마의 사랑은 이렇게 따스한 추억의 힘이 됩니다.
시인 함민복의 말처럼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손가락과 엄마의 손가락이 하나로 겹쳐지지요. 그 순간이 바로 아이를 씻기는 시간이니까요. 메리 커셋이 그린 엄마와 아이의 풍경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성 모자상>을 연상시킵니다. 아기 예수를 든 마리아의 모습을 녹여낸 듯한 거룩함과 따스함이 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따스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올까요?
모성, 고요함의 공간을 어루만지는 체온
그림을 보면, 딸이 추울세라, 신체부위를 비롯해 따스한 타월로 몸을 감추었습니다. 붉은 톤이 감도는 카펫 위에, 엄마는 목욕용 주전자에 따스한 물을 담아 아이의 발가락부터 씻겨나갑니다. 꼼지락거릴만도 한데, 아이는 엄마의 체온과 따스한 물의 기운이 좋은지 엄마 무릎 한쪽에 팔을 지탱한채, 친밀한 순간을 즐깁니다. 나경원 의원이 아이를 씻기는 모습에선 이러한 따스함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사건이 터진 후 본인은 “조명시설은 중증장애인시설에서 부른 자원봉사 사진작가가 설치한 것”이라며 “반사판과 조명장치는 기관 홍보 및 작품 활동을 위해 나 후보의 사전논의 없이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비서실장인 강승규 의원의 설명은 본인의 해명과 다릅니다. 사진작가에게 중증장애인 시설 '가브리엘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장애아의 실태를 알리기 위한 목표로 촬영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적과 대의는 존중합니다. 실제로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의 경우, 국내 입양아동 비율을 높이기 위해 연예인들과 지속적으로 입양프로젝트를 하고 계시죠. 이외에도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사진작업은 많습니다. 문제는 현장성을 강조하고 싶은 나머지 무리수를 두었다는 겁니다. 이런 사진작업에는 보호자 동행 및 아이들의 정서관리가 사전에 필요합니다. 많은 작가분이 이 사실을 숙지하고 계시지요.
나경원 후보님, 우리는 속지 않을 겁니다
영화 <도가니>의 몇 몇 장면이 아동보호법 17조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와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아동의 건강 또는 안전에 유해한 곡예를 시키는 행위'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영화 흥행을 넘어 배우의 심리적 안정에 대한 고려를 되묻기도 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을 지적한 것 좋습니다. 이 관점을 나경원 의원의 주장에 대입시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흥행을 위해 장애 아동을 씻기신 것은 아닌지요? 대의를 위한 촬영이라면 철저하게 메리 커셋의 그림처럼 은밀하고 따스한 순간으로 포착되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신체도 가려야 했고요.
언론에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지만 방송 5개사를 포함한 3개 이상 매체 중 어디에도 '자제해달라'는 요청은 없었습니다. 벌거벗은 장애인 아동을 씻기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 보낸점, 공분을 살 일입니다. 나경원 의원이 실제로 장애인 딸을 둔 정치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삶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들을 정서적으로 배려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저 많은 카메라와 조명 앞에서 과연 아이와의 따스한 교감이 가능할까요? 인권침해를 넘어 정치적 수사를 위해 아이와의 관계를 이용하지 마십시요.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열 손가락을 지어준 거룩한 진화에 대한 모욕입니다. 진심어린 사과 보여주세요. 나의원님. 가을하늘이 온통 코발트 블루빛입니다. 너무 맑잖아요......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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