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명품 브랜드 욕하지마라-우리의 자업자득이다

패션 큐레이터 2011. 7. 7. 00:54

 

 

 

오늘 청담동에 나갔습니다. 기업 특강 때문에 사전에 미팅도 하고 방향성도 잡아야 했지요. 블로그 때문에 패션업계에도 조금씩 소문이 나는 것은 좋긴 하나, 문제는 제가 무슨 만병 통치약인줄 아시는 분도 많나 봅니다. 하긴 교육 담당 하시는 분들도 이해는 갑니다. 그만큼 이 땅에서 기업의 특정 목적에 딱 부합하는 강의를 하기란, 그리고 그것을 던져줄 수 있는 인력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뜻일 겁니다.

 

대학교수라 불리는 분들의 강의를  보면, 진부하다는 평을 듣기 일쑤고, 그러니 이제는 전문기업들은 더 이상 교수분들을 불러서 강의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그렇다고 실무를 오랜동안 해온 분들은 또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가? 이건 또 아니었습니다. 두 영역에 걸터앉은 이들이 필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거죠. 주장이나 경험은 실무에선 일종의 이론의 체계로서, 하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업이 지금껏 해왔던 브랜딩 전략과 방향성들을 함께 살펴야죠. 이게 안되면 그저 외부강의는 교양강의에 머물고 맙니다. 아니면 방송인이나 유명인 불러다, 그냥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 직접 들으니 좋다. 그 수준에 머무는 거죠.

 

 

이 세상의 산책-평화로운 정원 A walk in this world-Peaceful garden_35.3x48cm_mixed media

 

강의를 할 때마다 너무 책임이 커집니다. 성격이 한번 한 강의는 왠만하면 폐기해버리고, 그렇게 쌓인 파워포인트가 280개 정도가 되더라구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기업전략과 마케팅이란 테두리, 그리고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재무적인 자원의 유무와 가용성 등 다양한 기업 내 요소들을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온 터라, 기업강의는 일반강의와 달리 항상 껄끄러운 말도 잘 던지곤 했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사실 점수따면 그만인데, 성격이 못되서 그런지 그러질 못합니다. 꼭 꼬집고, 그것도 대표 앞에서 CEO 들으라고 하고 앉았으니 저는 기업강의를 하기 어려워질듯 합니다. 수년 내에.

  

     

 

이 세상의 산책-아담 그리고 이브야 A walk in this world-Adam and EveⅡ_45.5x82cm_mixed media

 

뭐 어쩌겠습니까? 태어난게 이러니. 그래도 오늘처럼 더운 날, 작가 권숙자가 만든 멋진 부채 하나 들고 시원하게 등에 부쳤으면 합니다. 파리 마래 지구의 작은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하시나 보네요. 이 세상의 산책-아담 그리고 이브야 . 제목도 참 예쁩니다. 한국작가들의 초대전이 많아진다는 건 좋은 징조입니다. 한국미술이 서양미술(우리는 흔히 서양미술이라고 하면 유럽미술을 떠올리죠)의 독점권을 깨고 그 대열에 들어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청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바로 이것이야 말로 팝뮤직으로 시발된 한류가 다양한 영역의 결합과 분지로 나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내년부터는 전시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전시란 단순히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와 현대미술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미감, 전통과 결합된 현대적인 아름다움, 코리안 쉬크라고 불릴 만한, 우리의 것을 '주체적으로' 추출하고 시연해내는 참 고된 과정입니다.

 

올 해 안에 패션미학과 철학이 결합된 한 권의 책을 내겠지만, 이것만이 다는 아니지요. 결국은 전시라는 가시적인 성과와 맞물려 폭발력을 내야죠. 일반인을 상대로 패션과 미술에 대해 강의하면서 가장 화날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외국의 미술작품을 설명할 때는 '굉장히 교양을 쌓듯' 듯다가 한국미술이 나오면 바로 얼굴을 돌리는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우리 안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정신의 식민주의입니다. 개념 하나를 설명하려고 해도, 일상에서 만나는 연예인의 연기에 대해서 평하면서도 한국의 누구라는 식으로 외국의 이론이나 연기자를 병기하는 버릇. 이런 작은 것들 하나하나 고치지 못하고 있잖아요.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규정하지 못할 때, 우리보다 높은 누군가가 있어, 그가 우리를 규정해주고, 그가 우리를 향해 내린 규정을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초자아라 불리는 서구를 우리의 거울로만 삼으려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 입니다. (강의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군요......우수수)

 

오히려 뉴욕에선 재봉과 재단, 디자인 과정의 섬세한 섹터까지 한국출신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있고, 정작 명품 핸드백이라고 알고 있는 상품들이 한국기업의 ODM인것도 얼마나 많은지요. (이거 밝히면 꽤나 뒤집어지는 분들 많을 걸요. 한국의 장인들이 얼마나 가죽기술이 좋은 줄 모르셨죠?)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 내 자국민을 상대로 갖은 콧대를 세우는 건, 그렇게 돈은 긁어가면서도 한국사회에 기부금액은 코딱지만한 건, 결국 우리의 수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인겁니다. 이 상황도 끝이 보일 거에요. 어차피 명품이란게 희귀성에 근거한 권력의 추구이건만, 모두다 다가지는 핸드백, 별로 갖고 싶지 않은 시대가 오겠죠. 아무리 샤테크니 루이비통이니 해도, 그들이 가진 역사와 이야기를 아무리 포장해도, 그 또한 한계는 있는 거니까요.

 

제발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눈을 돌려주세요. 우리와 같은 동시대, 같은 장소, 삶의 틀 속에서 숨쉬고 밥먹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더 공감이 갈 수 있도록,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질책하고, 애정을 투자해주고, 밀어가야죠. 그래야 우리도 우리나라의 브랜드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 거구요. 이 모든 답은 사실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레알? 그럼요. 뉴요커와 서울의 패션은 동등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으며, 그 믿음을 전하면서 살려고요. 우리안의 가치를 여러분이 입고 다니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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