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YOUR INTERVIEW (4) FASHION
Fashion Curator
KIM HONG KI
Editor PAK SUN WOO
Photographer DO YUN JEONG
Translator SHIN HYE SOO
Editor's Note
편집자가 글과 이미지를 편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일까. 어쩌면 필자가 작업하는 인터뷰 기사는 인터뷰이 혹은 독자에게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에게 자기소개를 물어보는 질문으로 출발하지도 않아 이 사람이 누구이고, 나이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길이 없고 하물며 프로필 정보나 링크조차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독자를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장을 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행동할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대화로 출발한 인터뷰 기록은 필자의 목소리와 질문들을 배제한 채 오직 인터뷰이의 목소리만이 남았다. 질문을 쫓고,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쫓다보면 우리가 진정 듣고 싶었던 것과 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 소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쪼록 앞으로의 인터뷰 등을 통해 DMAG의 독자들이 보다 패션의 외연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워싱턴 포스트를 거쳐 현재 데일리 비스트, 뉴스위크의 패션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Robin Givham은 패션과 문화를 다룬 기사로 2006년 퓰리처 상을 수상 했습니다. 정치부, 사회부 기자들이 수상을 해왔던 지난 전력과 비교했을 때 그녀가 수상을 한 것은 이례적인 결과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패션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또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 봅니다.
Under Your Interview, 그 네 번 째 장(Chapter) Fashion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만난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국내에서 보다 단단하게 패션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고 또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힘쓰고 있는 그와 독자와의 대화를 열어 보았습니다. 대화는 총 10 개의 소주제로 나누었습니다.
현 패션의 상실 그리고 미디어의 왜곡, 패션 큐레이션에 대한 얘기로부터 디자이너의 인식의 시작과 욕망과 그 폭력성에 이르기까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이 패션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함의와 외연의 흔적들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 상실(Loss)
“패션의 외연에 대한 인식이 넓어진다면 이런 유행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중 미디어에서 하의 실종, 상의 실종, 빵 터진 사연, 굴욕사연, 셀리브리티, 종결자 뭐 이런 용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특히 패션 분야에서. 성찰 없는 글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반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질 못했어요. 반성을 하려면 패션에 대한 외연이 넓어져야 해요. (대중적으로 보았을 때) 패셔너블한 옷이란 것은 유명인의 옷을 따라 입는 것이죠. 사실 이게 최근의 문제는 아니에요. 16세기에서부터 그런 모습은 등장합니다. 단지 여왕과 귀족에서 현재의 연예인으로 바뀌게 된 것 뿐이죠.
상업 문화의 역사에 대해 밝혔던 로잘린드 윌리엄스의 드림월드(Dream Worlds : Mass Consumption in late Nineteenth-Century France Wrriten by Rosalind H. Williams)라는 책을 통해 얘기하자면 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원래 개인의 사람들은 자기 한 개인의 문화를 위해서 소비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집단의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서죠. 본래 물건 하나에 역사와 문화, 고색창연함이 깃든 것에 가치를 두었는데 궁정으로 돈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왕에게 잘 보여 지원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를 시작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기존의 가치보다는 새로움과 진귀함을 담은 물품들을 여왕에게 바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충성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 문화가 새롭게 굳어 진거죠.
그렇다면 앞으로의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은 소비, 문화, 개인의 자아 이 세 가지가 맞물려 있는 시대이죠. 패션이라는 것도 의식주 중에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식은 섭생의 문화, 집은 주거의 문화인데, 이상하게도 옷은 문화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아요. 항상 가보면 70년대 풍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이걸 사라, 이런 식이랄까? 해석의 근거가 박약하죠.
우리나라에선 패션에 대한 문화잡지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패션이 다른 영역들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그런 잡지가 필요해요. 패션이 영화에게, 그래픽에게, 인류학에게, 문화에게 그런 각각의 영역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현재 집필 중인 책에 그런 영역들에 관한 글을 싣고 있어요. (일반 대중들과 매스미디어들이) 패션의 외연에 대한 인식이 넓어진다면 이런 유행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 왜곡(Distortion)
“패션이란 것은 집단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패션종사자들은 사회행동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에 대한 개인의 생각(근거)이 (결과를 통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죠.”
유명 드라마나 특정 연예인의 옷차림에서 가져오는 것이 트랜드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트랜드가 될 수 있는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트랜드가 된다는 것은 앞선 패션의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 가능성들을 얘기하려면 그 대안들이 패션에 대해 어떤 역할들을 해야 해요. 또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명확해야 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왜 패션을 다루는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하냐고 말이죠. 패션이란 것은 집단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패션종사자들은 사회행동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에 대한 개인의 생각(근거)이 (결과를 통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심리학적인 역학(dynamic)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죠.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래셔널(Rationale)이 명확해야 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패션 큐레이션을 하는 다양한 복식사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있어요. 미국에는 굉장히 좋은 패션큐레이터들이 많아요. 그들 중 1990년대에 활동했던 과거 보그의 편집자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의 글은 굉장히 매력적이죠.
“천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오히려 너무 지루하거나 평범하거나 단조로운 것을 피해야지.” 보그 편집장시절 아름다운 사진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편집하는 것은 정말 지겨운 일이라며 그것을 가지고 뭔가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그녀는 주장했다.(아이콘, 차이를 만들어내는 200인의 얼굴 - 바버라 캐디)
3. 패션 큐레이션
“꼭 디자이너 옷만 전시하는 게 패션 큐레이터의 일만은 아니에요. 패션의 요소를 이루고 있었던 모든 요소들을 다루는 거죠. 그건 안경이 될 수도 있고, 쥬얼리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사실 패션 큐레이션이라는 일이 방금 얘기한 것에서 모두 보여 진 거예요. 사회 문화적으로 증축된 패션이라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적인 요소를 전시장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죠. 꼭 디자이너 옷만 전시하는 게 패션 큐레이터의 일만은 아니에요. 패션의 요소를 이루고 있었던 모든 요소들을 다루는 거죠. 그건 안경이 될 수도 있고, 쥬얼리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아니면 컨버스의 역사를 다룬다거나. 결국 운동화의 역사란 것이 무어겠어요? 갇혀 있었던 인간이 야외로 나오고 국가이념에 따라 신체를 조형하고 유니폼을 만들어 내는 패션에 함께 등장한 것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사회적인 함의와 함께 전시장에 담아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패션 큐레이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4. 옷장
“디자이너에게 있어 인식의 시작은 옷장인 셈이죠. 그걸 형편없고 의미 없는 것처럼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되는 거죠.”
디자이너의 옷장은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거지요. 지적인 옷의 고고학을 찾아가는 것. 미셀 푸코가 당대 사회의 어떤 빛깔, 무늬, 인식적인 구조를 찾아가는 것을 에피스테메(episteme :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라 하고 그걸 찾아내는 것을 고고학적 발견이라 했죠. 이처럼 디자이너에게 있어 인식의 시작은 옷장인 셈이죠. 그걸 형편없고 의미 없는 것처럼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되는 거죠.
여인의 옷장이라는 매력적인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속에는 함의(含意)가 담겨 있었죠. 헌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티아라의 함은정이 무엇을 입었습니다. 와, 예뻐요.” 그런 얘기들을 가지곤 옷에 대한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지요.
5. 관통
“시대의 예술에 대해 평론이 힘을 입어 예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있어야 하죠.”
어떤 한 분야를 깊게 안다는 것, 그것을 관통하는 논리는 패션, 문화, 연극, 무용, 미술, 퍼포먼스, 설치, 광고 등 모든 것에 통용된다는 것이죠. 제가 얼마 전에 광고 디렉터 박웅현 선생님을 만나 이십 여 분 산책을 같이 했는데, 그때 기분이 좋았어요. 어떤 것을 관통하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공유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얻었기 때문이죠.
가끔 저를 소개하는 곳에서 큐레이터라고 말하기도 하고, 평론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평론가에 대해 마치 훈장질을 하는 선생님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평론이라 함은 존 러스킨과 같이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어야지요. 시대의 예술에 대해 평론이 힘을 입어 예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있어야 하죠.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소위 타인을 공격하고 억누르기 위한 이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6. 폭력&저항
“패스트패션과 셀리브리티에 짓밟히고, 나는 없고, 유행만 있는 이 유행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리라 봅니다. 그걸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교수님 한 분이 국내 패션교육의 위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패션평론을 학과에 만들고 싶어 신청접수를 했는데, 아무도 하질 않더라고 하더군요. 사실 영화과에선 영화평론 수업을 많이 듣잖아요.(웃음)
우리나라는 아직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주체성이 부족해요. 변화하는 시점은 우리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옷이 갖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이 의문화가 단순한 패스트패션과 셀리브리티에 짓밟히고, 나는 없고, 유행만 있는 이 유행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리라 봅니다. 그걸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7. 필요한 것
“그런 점을 집어내 주는 것 또한 선배의 의무죠. 그건 무조건 싫은 소리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죠.”
신인디자이너가 기성디자이너에게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어요. 신인들은 자신들이 과감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가보면 별 것 없는 게 많아요. 그래서 그들에게 역사를 공부하라는 얘기를 많이 하죠. 특히, 서양에선 여러 학기에 걸쳐 복식사를 배우죠. 철저하게 익히는 겁니다. 반면 한국에선 겨우 1학기 정도 교양수업 일환으로 끝내요. 왜 역사를 공부하겠어요. 과거의 수많은 패션 스타일들이 변주를 통해 우리 눈앞에 재등장하기 때문이죠. 뒤집어 얘기하면,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디어와 디자인들이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죠. 그래서 디자이너는 늘 겸손해야 해요. 디자이너는 작은 진폭 안에서 실험 하고 시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후 넓은 외연의 맥락 속에서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해온 작업들을 뒤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토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기성 디자이너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에요. 자신의 옷에 대해 자신이 설명을 못해요. 물론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사람이지 텍스트적인 사람은 아니죠.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너무 약하고 가벼워요.
또, 그림이나 요소를 형태화하고, 문화의 영역을 옷 속에 녹여내는 것, 이런 능력 또한 많이 부족해요. 이건 시각적인 단서에 역사와 이야기를 입힐 토대가 약해서입니다. 물론 패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무시할 순 없어요. 판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실험에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 아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는) 피복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해요. 피복학, 의류학, 의상학, 패션스터디- 가까이 보면 관점이 다르죠. 예로 피복학이라 함은 자연과학에서 보는 관점이죠. 그쪽도 알아야죠. 소재에 대한 물성들을 명확하게 알아야 그 옷에 갈 수 있는 한계점을 알고 시작하는 거죠. 신인들은 그런 것이 부족해요. 그런 점을 집어내 주는 것 또한 선배의 의무죠. 그건 무조건 싫은 소리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죠.
8. 근본
“보다 현명한 패션 소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이 필요하고, 큐레이션이 필요하고, 패션의 생각과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죠.”
굳이 패션이 예술이 되어야만 하나? 196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를 시작하면서부터 예술의 영역 속에서 패션이 편입될 수 있다고 보는가, 없는가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업성을 배제하고 웨어러블 아트만을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패션이 사업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도 당위고, 패션이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당위일 뿐, 그때그때 적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샤넬이 말하길, “옷이란 나비의 변태과정과 같다.”라고 말했죠.
1920년대 패션은 세 가지의 큰 방향성을 띄었죠. 여성해방을 위해 뛰었던 샤넬, 장인의식을 주장한 랑방, 꿈의 패션을 말한 스키아파렐리. 그 세 가지 방향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죠.
사실 옷을 착용하고, 착탈하는 행위가 기원 전 그리스시대부터 이어져 왔는데 그 행위 자체가 지금이나 그때나 무어 다르겠어요. 우리는 보다 그 근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죠. 오비디우스가 말했죠. “가문비나무 개수만큼이나 많은 것이 그리스 여인들의 헤어스타일이다.” 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여자들이 수많은 스타일을 추구하고, 도덕주의자들이 이러한 행위들을 비판하는 행태나 다를 게 없어요.
현명한 패션 소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이 필요하고, 큐레이션이 필요하고, 패션의 생각과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죠.
9. 욕망
“중요한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위한 전력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신인디자이너를 많이 소개해주는 것은 너무나 고맙고 좋아요. 하지만 마구잡이로 띄어주는 것도 자제해야 해요.” 라는 얘기를 중견 패션계 인사 분에게 조언을 들었어요. 한 젊은 디자이너의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on)의 수석어시스턴트였고 한 젊은 디자이너가 한강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했었죠. 국내 굴지의 패션 회사에서 그를 데려오려고 경합을 벌였습니다. 연봉 2억에 데려 올 수 있었지만 그가 한 디자인은 매번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죠. 그리고 6개월 뒤에 자살을 했어요. 동양화를 전공했던 천재였다고 하는데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죠.
디자이너를 입도선매(立稻先賣 : 벼를 논에서 거두지 않은 채로 팔아 버리는 일)하는 그 문화가 잘못된 겁니다. 그 사건에는 수많은 요소가 응결되어 있는 거예요. 너무 어린 나이에 빨리 부각 된 것이 잘못이겠죠. 중요한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위한 전력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젊은이들 심정에선 왜 실력 있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느냐며 큰소리칠지 몰라요. 하지만 빠른 진급과 성공은 그만큼 더 큰 도전도 안겨준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죠.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한 젊은 친구가 한강에서 뛰어내린 사건을 통해 젊은 감각이 인정받을 수 없는 구조가 더욱 견고하게 굳어지고 있는 점 또한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선생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왜 함부로 젊은 사람들을 언론에 노출시키면 안 되는 줄 알아요? 위에 오르기만 해선 소용이 없는걸요.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엔 물어볼 수 있는 멘토가 있는 것이 행복한 거죠.” 당장 어떤 문제를 어디선가 제시할 적에 자신이 이를 해결해야만 해요.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어요. 그럼 조직 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죠. 만일 자신이 대리라면 물어볼 수 있는 이가 많아요. 과장이 있고, 차장이 있고, 사장이 있어요.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질문을 할 수 있는 이는 점점 적어지는 거예요. 너무 젊은 나이에 눈에 띄면 그래서 힘들다는 거지요. 올라간 시기가 빠르고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버린 후에는 내려갈 길 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내려가는 길은 그만큼 경사가 가파른 법이죠. 그 얘기를 듣고 난 저녁, 저는 밤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10. 계획
“루이비통을 싫어할 필요도 없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사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역사가 있고,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국내 큐레이터 1호라 해놓고 전시를 안 할 수는 없겠죠.(웃음) 장 폴 고티에 전시를 계획 중입니다. 그 이후엔 샤넬 그리고 루이비통의 전설의 트렁크 100개 전 이런 것들도 진행할 거예요. 이외에도 안경이란 패션 소품에 담긴 에로티시즘의 의미를 묻거나 한복에 녹아있는 우리 자신의 미감을 소개할 수 있죠. 다양한 패션의 얼굴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알기도 너무 어렵듯, 인간이 평생 동안 입는 옷과 여기에 담긴 이야기를 전시하는 것 또한 깊고 다양한 주제를 토해낼 수 있습니다.
인터뷰와 편집에 수고해 주신 박선우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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