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욕여행은 원래 연초에 기획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렉산더 맥퀸>전에 대해
알고 있긴 했지만, 사실상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뉴욕은 여행 성수기인데다가
회사에 사전에 말해 놓지 않은 탓에, 급작스레 휴가원을 내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알렉산더 맥퀸 전시가 시작된 것은 5월입니다. 초기 국내 언론들도 그의 전시를 대서특필했지요.
그만큼 패션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의 옷은 면면에 패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많은 자료들과 런웨이 쇼, 비디오 자료와 도록들을 통해 그의 작품을 봤을 뿐,
사실상 그의 옷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비평할 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번 세계 최초의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옷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패션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런웨이 쇼에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글을 써도, 현미경처럼 자세히 옷을 들여다보고 사색할 시간을 벌기가
쉽지 않은 탓에 패션에 대한 리뷰들은 대부분 죽은 글이 되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쓰여지는
대부분의 글들은 생명력이 짧고, 실제로 사실관계도 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국내 언론에 꽤나 언짢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저였기도 합니다.
인천공항을 통해 나리타를 경유, 뉴욕으로 가는 시간,
부랴부랴 구한 티켓이다 보니 제한 요건이 꽤 많았습니다. 나리타에서
7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거든요. 뭐 그 덕분에 가져간 알렉산더 맥퀸 도록과 자료들,
논문 8편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지금껏 패션의 인문학에 관한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입니다만
한국의 저자들이 쓴 대부분의 글들이 2차 자료에 머물기 때문에, 생생한 느낌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진정성을
읽어보기에 적절한 자료들이 양산되기 어렵습니다. 국내 저자가 쓴 논문 8편은 포멧만 조금 다를 뿐
색다른 사실이나, 혹은 관점을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분들이 대학에서 복식 미학을
가르치고 패션과 문화를 가르치는 분들이리라 생각해보면 조금 답답합니다.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동안 라멘이 나왔네요.
야채와 돼지고기가 잘 곁들여진 일식라멘입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사실 밖으로 나가서 일본에 사는 지인분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요. 시간이 어중간했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공항 내 미소키친이란
곳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라멘과 닭고기 튀김, 아사히 맥주 한잔.
커피까지 한잔 시켜놓고 천천히 의자에 앉아
읽는 글들이 달콤합니다.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면 거대한
규모의 박물관과 갤러리들을 자주 갑니다. 느낀것이 많다는 평이 나돌지만
사실 뮤지엄이란 공간에서 '강력한 통찰력'을 얻어오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알렉산더 맥퀸전의 사례를 빌어 말씀드리자면, 그의 옷은 동서양의 상상력이 모두다
결합되어 있기에, 그 속살을 읽어내려면 동서양의 복식체계와 디자인, 패턴과 무늬들의 다양한 역사들까지
함께 읽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무수한 디자인의 영감을 한땀한땀 엮어내고 직조하는
디자이너의 손길, 나아가 장인의식이 발현된 그 손길을 읽어내는게 필요하지요. 뉴욕에
가서 강의준비를 하면서도 자료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사전 프리뷰 기회를
얻어, 사람들이 없을 때 전시회장에 들어가 볼 수 있기도 했고요.
소화도 시킬 겸, 나리타 공항 내부를 걸었습니다.
그래봐야 별로 볼것도 없습니다만, 어디를 가건 기념품가게는
있으니까요. 조악한 품질이지만 테디베어에 입혀놓은 기모노를 살펴봅니다.
검은색 핸드백 위에 수놓은 일본풍의 국화 자수가 눈에 들어오지요. 이 국화무늬는
이번 알렉산더 맥퀸의 의상에도 사용된 것입니다. 비슷한 패턴인데, 맥퀸의 손에서는 예술로
이곳에서는 조악한 기념품을 위한 패턴으로 태어나지요. 그것이 차이입니다.
왜 테디베어를 Obi Bear라고 했을 까요
그건 기모노의 가장 핵심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오비벨트를 한 곰인형이기 때문입니다. 오비벨트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기모노를 발명하면서, 신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하죠. 서양인들은 유독 이 오비벨트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것은 허리선의 중심부에서 발산되는 에로틱한 느낌을
가장 잘 살려주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알렉산더 맥퀸 전시를 봐도
기모노를 수도 없이 변용한 그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은 오비벨트의 에로티시즘에 착목됩니다.
서구에선 여성의 몸 각 부위에 따라, 유행의 역사가 변화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레이버는 이것을 가리켜 '성감대의 변화가 곧 유행의 역사를 설명한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물론 1900년대 이전까지의 의상에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의외로 옷이 우리의 신체를 발견해서 이용해 먹는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는 꽤 좋은 이론의 틀이기도 합니다.
인형 하나를 만들어도
그 위에 옷을 입혀도 중요한 건
옷이 발산하는 에로틱한 면모가 아닐까요?
인사동에서 한복을 입은 인형들이 많지만, 한복이 가진
강렬한 선의 매력을 죽여버린 것들이 많지요. 인형을 디자인하고
옷을 입힐 때, 가장 유심히 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 스토리텔링이란 단어가 유행입니다.
문화와 예술, 혹은 상품을 팔 때, 그 속에 인간이 거절하기
에 어려운 스토리, 이야기의 가치를 심자는 게 핵심이겠죠. 중요한 것은
한국은 뭐가 유행한다 하면, 정작 중요한 내용들을 고고학과 인문학을 통해 근거를
밝혀낼 생각은 안하고, 툭하면 '어디서 학위를 했니 어쩌니' 하는 어설픈 전문가들과 강의자들이
내용을 상품화해서 강의하기만 바쁩니다. 그러니 말만 무성하고, 핵심은 없고 실전 사례는 전무한 거지요.
9월에 한국패션협회에서 신인 디자이너들과의 심도깊은 컨퍼런스를 엽니다. 패션계에 들어온
이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우리들의 인식의
허리를 꼭 동여매줄 멋진 오비 벨트가 하늘에서 내려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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