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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 퍼시픽 특별강의를 마치고-화장의 문화사

패션 큐레이터 2011. 5. 18. 23:21

 

 

지난 주 아모레 퍼시픽 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미술관 옆 인문학>이란 과정 하에 '화장의 문화사'를 강의했습니다. 메이크업을 둘러싼, 화장품의 소재와 테마를 둘러싼 시대별 그림 속 풍경을 따라 고대 이집트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넘어, 중세와 바로크, 로코코의 연지문화, 빅토리아 시대의 본격적인 화장품 산업의 태동과 마케팅 전략에 이르는 광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6시간 동안(정확하게는 6시간 30분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솔직히 저 자신도 다시 한번 공부를 하고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화장품과 관련된 홍보와 마케팅, 아티스트로 일하는 분들이 대상으로 듣기 때문에 공감의 폭과 이해도가 깊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단순하게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한 교양강좌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생의 불편한 현실'을 대면케 하고 우리가 범하는 실수를 과거의 양식에서 찾아내 대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화장을 둘러싼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이미 패션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미인형을 둘러싼 시대의 담론과 기술적 성취, 유혹의 코드가 보입니다. 이런 것들을 미시적으로 섬세하게 일일히 바라보기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숙제만 잔뜩 남겨드리고 온 것 같아 송구하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아시아 시장과 유럽 시장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경합하기 위해서, 우리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실천의 내용들을 익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툭하면 최근 들어 '인문학이 대세다'란 수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없어지고 사회학이나 인접 인문학들이 폐위되는 상황에서 중간저자들이 그저 쉽게 떠먹을 수 있게 인문학을 풀어낸다고 이게 다가 아니란 것입니다. 심심하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니 하면서 거창한 원론만 떠들고, 실제로 조직의 중추가 되어야 하는 관리자들의 심성구조를 바꾸고 연수해가지 않으면 이건 그냥 구호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특히나 사업을 하거나, 저 처럼 기업전략과 마케팅, 해외시장과 싸우고자 하는 이들에겐 인문학은 결코 교양강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원하는 관점과 열정을 이해해주고, 향후 더 나은 프로젝트를 위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아모레 강의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국과 유럽의 FTA가 발효되고 전자산업은 활짝, 화장품 산업은 울상이라는 총체적인 인상은 나왔습니다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결국 어떻게 규정하고 접근하는 가에 따라, 더 큰 돌파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지혜를 찾기 위해 역사와 라틴어, 미술사를 공부하는 요즘입니다. 인문학적 지식을 시장과 연결하는 것. 이것은 그저 멋진 말로 통론으로 해결될게 아닙니다. 요즘들어 마케팅이 정말 과학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인생에 멋진 '마케팅 관리론'책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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