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 고드워드 <미인> 캔버스에 유채, 1912년, 개인소장
바람이 붑니다. 한 줌의 재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시간의 그림자를 잡으려고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4월을 가리켜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는데, 왠걸요. 3월이 이다지도 힘들줄이야. 마치 성장통을 앓는 아이의 다리처럼 한참을 저리도록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브뤼트>매거진 4월호가 패션 특집입니다. 50페이지를 훌쩍 넘을 특집 기사를 저 혼자서 다 썼습니다. 왜 이리 욕심이 많나 생각이 들면서도, 단순하게 기존의 매거진이 보여주는 패션 특집 기사가 아닌, <패션과 장인의식>을 테마로 쓴 글이었습니다. 통일성을 위해 저 혼자 짐을 져야 했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외고를 4편이나 써야 했고요.
KBS TV 미술관 녹화를 끝내던 화요일, 저녁에는 집에 와서 왠지 모를 쓸쓸함에 사로잡혀 한 동안 빈 하늘만 멍하니 바라봤네요. 경인방송 고정 이후로 오랜만에 나간 방송입니다. 그것도 <미술관 가는 길>이란 강의 프로그램이라, 20분씩 2회에 걸쳐 미술 속 패션 이야기를 강의 하는 시간이었죠. 스크립트 하나 없이, 평소에 하던 강의 버릇이 그대로 스며드는데, 화면에는 어찌 나올 지 참 걱정됩니다.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카메라 4대가 움직이며 저를 잡는 통에, 긴장감이 커져서 제대로 그림의 의미들을 잘 전달했는지 걱정입니다. 블로그 친구분이 이왕 나가는거 예쁜 옷 입고 나가라고 하셔서, 바이어스 커팅이 들어간 독특한 스타일의 수트를 입고 나갔습니다. 화면에 큰바위 얼굴로나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을 마치고 나면 방송에는 2회 분량의 40분 강의만 남겠지요. 하지만 이걸 찍기 위해서 강의한 시간은 실제로는 4시간이 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듣기 위해 경주에서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와준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한없이 고맙고 힘이 되었습니다.
패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저 유명 연예인의 옷차림이나 스타일링 전략에 머물고 있는게 우리 나라의 현실이라, 이번 프로그램이 비록 미약하지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패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신체와 이상미와, 시대의 정신을 조형하는 데 일조했던 패션의 역할과 기호적인 의미들을 조금이라도 폭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제 부족한 강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게 될테니까요. 4월 1일과 8일 양일에 걸쳐 <미술관 가는 길> 시간을 통해 여러분과 만나겠네요. 순수 예술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청률이 높진 않지만,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미술소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문화적 갈증에 허덕이는 분들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 속 패션의 의미에 조금이라도 배워보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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